<피플 인 더 뉴스>한국문화진흥 김용찬 사장

한국문화진흥의 김용찬 사장(59)은 지금도 영상업계에서 「대부」의 대접을 받는다. 문화상품권을 발행하는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지 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요즘에도 영상업계의 후배사장들은 김 사장을 찾아와 시시콜콜한 업계 이야기와 중대사를 의논하기도 한다.

대학졸업과 함께 삼성계열인 한국비료에 입사, 줄곧 삼성그룹에서 일해 온 김 사장이 영상산업계에 첫 발을 들여 놓은 것은 93년 1월. 국내 영상산업의 르네상스로 평가되는 90년초 재벌 기업들은 영화와 비디오(프로테이프) 사업을 연계한 영상사업 분야에 앞다퉈 진출했고 삼성그룹은 스타맥스라는 프로테이프 제작사를 전초기지로 삼았다. 51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김 사장은 오늘날 벤처와도 같은 스타맥스의 대표이사로서 삼성의 영상사업을 진두 지휘했다.

『당시에는 영상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여겨져 삼성·대우·SK·현대·LG와 같은 대기업들이 앞다퉈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이 매우 치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상사업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무척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 사장은 대표직을 맡고 있던 3년 동안 스타맥스를 프로테이프 제작사에서 국내 영상산업의 중심 업체로 키워 놓았다. 프로테이프 제작·배급 부문에서 업계 수위의 시장점유율을 갖게 됐으며 영화 제작에도 뛰어들어 대기업 자본이 충무로에 유입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김 사장의 이같은 성과를 토대로 삼성은 96년

「삼성영상사업단」을 발족하게 된다.

이후 김 사장은 삼성영상사업단의 고문으로서 2년간 역임했다. 이렇게 보면 5년 정도를 영상산업계에 몸을 담은 셈이다. 김 사장은 『고생도 심했고 일도 많았지만 한국비디오제작사협의회를 만들어 업체들이 과당 경쟁에서 벗어나 공정 경쟁을 하면서 한편으로 협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놓은 것이 가장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삼성·대우를 비롯한 5대 재벌들이 그룹의 자존심을 걸고 시장점유율 확대에 혈안이 돼 있던 당시 이들 기업을 한데 모아 한국비디오제작사협의회를 만드는 산파 역할을 해냈으며 이 협의회를 중심으로 외화 낭비가 심한 판권 경쟁을 자제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몇몇 업체가 공동으로 영화 제작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도 조성했다. 김 사장이 만든 한국비디오제작사협의회는 현재 문화부 사단법인인 한국영상협회로 발전, 한국 영상산업의 구심점이 됐다.

『사람은 가고 올 때를 정확히 알고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상사업단 고문 2년차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떠나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7년 11월 김 사장은 홀연히 영상업계를 떠나 한국문화진흥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56세의 나이로서는 불가능할 것 같은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굴해 최고 사령탑을 맡은 것이다.

『당시에 백화점상품권은 있었지만 아무도 문화상품권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영화·비디오·음반·서적 등 각종 문화상품 산업이 발전한 문화선진국이며 일반 국민의 문화적인 욕구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문화상품의 소비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 문화상품권 사업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문화상품권을 발행해 판매하면 영화·음반·비디오·서적과 같은 문화상품의 소비가 늘어 관련업계는 물론 일반 국민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김 사장의 판단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회사 설립 다음해인 98년 210만장(100억원)이었던 문화상품권의 발행량은 99년에는 760만장(370억원)으로 3.6배 늘었다. 올해에는 1300만장(650억원)으로 사상 처음 1000만장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2001년에는 1800만장(90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98년 기준으로 하면 문화상품권은 만 3년 만에 발행량에 있어 8.6배, 금액으로 9배 정도 늘어나는 셈이다.

이순(耳順)을 목전에 둔 요즘에도 김 사장은 새로운 사업 구상에 여념이 없다. 디지털 인터넷 시대를 맞아 전자상품권을 발행하고 문화상품권을 기반으로 한 e비즈니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

『금년 말에 인터넷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문화카드를 발행하고 내년에는 관광카드를 발행할 예정입니다. 문화상품권을 통해 얻은 이익을 업계에 환원한다는 취지에 따라 영화 비디오 제작에 투자하고 외국의 영상 메이저와 제휴하는 사업도 구상 중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각종 문화상품권과 엔터테인먼트 사업, 문화 e비즈니스 등을 연계한 종합문화기업으로 한국문화진흥을 키워 놓을 계획입니다.』 노병은 다만 사라질 뿐이라는 맥아더 장군의 명언은 적어도 김 사장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인 것 같다.

【이창희 changhlee@etnews.co.kr】

<약력>

△1941년 6월 1일생 △1960년 2월 대구 계성고 졸업 △1965년 2월 고려대학교 상학과 졸업 △1965년 12월 한국비료 입사(삼성그룹) △1979년 2월 제일제당 이사(마케팅 총괄) △1982년 2월 제일제당 상무이사(국내판매 총괄) △1988년 3월 삼성시계 전무이사(영업총괄) △1988년 10월 고려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25기) △1993년 1월 스타맥스 대표이사 △1994년 한국비디오제작사협의회 회장 △1996년 1월 삼성영상사업단 상임고문(영화사업 부문) △1997년 11월 ㈜한국문화진흥 대표이사(현재) △1998년 7월 고려대학교 컴퓨터 과학대학원 수료(4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