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남 주자」
요즘 매스컴에서 자주 거론되는 화제 중 하나가 「지식경영」이다. 하지만 지식경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일상적인 기업활동에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늘 해 온 것이다. 즉 사람을 만나 서로의 아이디어를 나누고 그것을 정리해 다시 사업전략으로 다듬고 회사의 조직과 사업을 통해 시행하는 모든 기업활동이 지식경영에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경영이 강조되는 까닭은 갈수록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사업환경에서 각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경험을 주위사람들과 제때 제대로 공유함으로써 일이 더 잘 되게 하자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업무담당자 외에는 그 업무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을 가진 사람이 없다. 따라서 그 사람이 있으면 5분만에 처리할 일도 다른 사람이 맡게 되면 1∼2시간 걸리는 것은 기본이고 어떤 때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하지만 지식경영이 정착하면 개개인의 머릿속에 숨겨져있는 경험이 모든 사람에게 공유된다. 때로는 머릿속에 기억되는 암묵적인 방법으로 또는 기술되어 공개되는 형식화된 방법으로 지식은 확산된다. 그리고 알려진 경험과 지식은 공유될수록 그 조직은 시행착오없이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얻게 된다.
지식은 측정하기 쉽지 않지만 가진 지식을 잘 활용하면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다. 한 예로 스티븐 스필버그는 쥐라기공원이란 영화 한편으로 1조원이 넘는 흥행수익을 올렸다. 이는 국내 자동차회사들이 연간 150만대 이상을 수출해야 얻을 수 있는 수익에 해당한다고 한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바로 디지털 경제의 시대, 지식의 시대가 그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아는 자가, 정보를 가진 자가 성공한다. 어떤 사람 혹은 어떤 조직에 축적된 지식이 어떻게 활용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공여부는 물론 그 기업의 장래까지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우리 경제가 일본 경제를 모델로 벤치마킹에 주력할 당시인 80년대 초반의 일이
다. 일본과 합작관계에 있는 어느 회사는 일본의 관계회사로부터 여러가지 도움을 받았다. 우리가 겪지 못한 경험과 다양한 사례 정보를 일본이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의 한 부서장이 일본관계자를 찾아가 우리의 실정에 도움이 될 여러 자료를 챙겨왔다. 그리고 1년 후 그 부서장이 바뀌었다. 신임 부서장은 다시 일본에 가서 같은 관련자료를 얻어온다. 다시 1년 후 부서장은 또 바뀌었고 그 부서장도 관행처럼 일본을 방문해 우리의 사정을 설명하고 관련자료를 요청했다. 그러자 일본의 담당자가 한마디 내뱉었다. 『어떻게 너희들은 매번 와서 똑같은 자료를 청구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3년 전에는 이런 자료를 줬고, 2년 전에는 이런 자료를 줬고 지금 요청하는 자료도 그것들과 별반 다를 게 없지 않느냐』
는 것이었다.
이 얘기를 들은 신임 부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사람이 바뀔 때마다 그가 가진 지식과 노하우가 제대로 전수되지 못하는 풍토에서 일하는 반면 일본기업들은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관리하는 데 그만큼 앞섰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그 회사의 내부시스템 문제를 고쳐나갔다. 경험과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체제로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직원이 회사를 떠나더라도 그 사람의 업무경험은 회사 안에 쌓이게 시스템을 바꾸어간 것이다.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제대로 실천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아침에 출근해서 『자! 우리 지식을 공유하자』고 외친다고 해서 공유되는 것이 아니다. 또 많은 사람들은 정교한 컴퓨터 시스템이 지식경영을 이루게 해 줄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물론 지식경영이 제대로 정착, 시행되려면 컴퓨터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자기만이 알고있는 지식과 경험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지식 공유의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기업에서는 아무리 좋은 최신의 지식경영 시스
템을 도입해도 헛수고일 뿐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그러나 청기와 장수같이 혼자만 아는 것은 더 이상 기업에 힘이 될 수 없다. 자기가 습득한 경험과 지식을 함께 나눌 때 그 사람과 그런 사람이 모은 기업은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디지털세상에서는 배워서 남 주는 자가 더 크게 성공한다. 지식을 공유하는 풍토를 만들어 나가자.
김형회(한국IBM마케팅총괄본부 수석전무, hhkim@kr.ib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