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카메라 시장은 끝났는가.」
최근 디지털카메라 시장의 급성장으로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필름카메라 시장도 이제 막을 내릴 때가 되지 않았냐는 섣부른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세계 카메라 시장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이런 전망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는게 중론이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카메라 산업은 1924년 35㎜필름과 전용 카메라가 개발되면서 보급화가 시작된 이후 1960년대 자동카메라 출시로 한 단계 도약한다. 전자식 자동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카메라의 종주국으로 군림하던 독일업체들이 권좌를 일본 업체에 내줘야 했다. 현재는 일본의 8개 카메라 브랜드가 전체 카메라 시장을 이끌고 있으며 독일 업체들은 전문가용 카메라로 분류되는 일안반사형(SLR:Single Lens Reflex) 카메라 시장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후 일본업계가 전세계 카메라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80년대에 줌카메라의 등장으로 비약적인 성장세를 구가한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90년대 들어 공급포화로 인한 시장 정체의 기미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카메라 메이커들은 신규 수요 창출을 위해 필름을 사용하지 않고 전자소자를 이용해 메모리에 영상을 입력하는 디지털 카메라와 새로운 규격의 필름을 사용하는 APS(Advanced Photo System) 카메라를 출시하기에 이른다.
디지털카메라의 성장세는 거의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거세었다. 1년 늦게 시장에 진입한 APS카메라는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시장에서 지난 98년 20%라는 기록적인 시장 점유율을 달성해 성공가도를 달릴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는 디지털카메라의 승리. PC와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등장한 디지털카메라는 APS 카메라의 시장지위를 무서운 속도로 끌어내렸고 이 때부터 디지털카메라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한다.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캐논·올림퍼스·니콘 등 35㎜필름 카메라 업체들과 소니·파나소닉·샤프 등 전자업체 및 PC업체들까지 무려 30여 업체가 가세한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혼전에 혼전을 거듭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디지털카메라가 기존 35㎜ 카메라 시장도 잠식해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실제로 35㎜ 카메라는 디지털카메라 등장 이후 시장규모가 소폭 감소추세를 보였
다. 전세계 필름카메라 시장규모는 대략 4000만대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일본카메라협회(JCIA)가 발표한 지난해 일본 카메라업체들의 필름카메라 출하대수 3300만대를 기준으로 역추산한 것으로 일본 업체들이 전체 시장의 80% 가까이를 점유하고 있다는 업계의 정설에 따른 것. 일본의 한 조사업체는 자동카메라 시장이 98년을 정점으로 매년 축소일로를 걸어 2005년에는 3000만대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일본이 세계 시장 주도
그러나 유일하게 고급형 줌카메라는 여전히 성장가도를 유지하고 있다. 전세계 줌카메라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일본 카메라 업계의 동향을 보면 이같은 추세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일본카메라협회의 발표자료를 근거로 볼 때 일본의 올 상반기 줌카메라 출하대수는 600만대.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2.4% 증가한 것으로 이런 추세대로라면 올 하반기까지 1300만대 출하는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SLR 카메라도 CCD를 사용한 디지털로 돌아서고 있고 일반 필름카메라도 저가형 디지털카메라에 시장을 잠식당하는 추세지만 고급형 줌카메라만은 꿋꿋한 것이다. 이는 후진국과 제3세계를 중심으로 한 미개척 시장이 남아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 유일의 카메라 메이커 삼성테크윈의 관계자는 『현재 전세계 카메라 시장은 수량 기준으로 35㎜ 카메라가 70%, APS 카메라가 15%, 디지털카메라가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며 『향후 카메라 시장은 디지털카메라의 고속 성장과 함께 후진국 시장을 중심으로 35㎜ 줌 카메라의 꾸준한 성장이 예상된다』고 분석전망 했다.
디지털카메라는 APS카메라 등 경쟁력이 떨어지는 시장을 잠식해 들어감과 동시에 전체 카메라 시장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분석된다.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컴퓨터와 네트워크 인프라 등이 잘 갖춰진 선진국과 소득이 높은 국가 위주로 형성되고 있으며 최근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권에서는 대만과 한국이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가트너그룹은 지난 8월 밝힌 자료에서 현재 미국에서 디지털카메라를 소유하고 있는 가정은 540만 세대에 이르며 올해말까지 약 1270만 세대에 보급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 대만 시장 급성장
일본의 경우는 그 규모가 더 어마어마하다. 일본의 전파신문에 따르면 일본 업체들이 세계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점유율은 90%. 실제로 일본사진기공업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올 상반기 디지털카메라 출하액은 수출을 포함해 전년 동기 대비 117.3%포인트 증가한 1716억엔에 달했다. 이에 반해 필름카메라는 13.1% 감소한 1447억엔을 기록했다. 대수기준으로는 디지털카메라가 131.3% 증가한 398만대에 달한 반면 필름카메라는 0.1% 증가한 1488만대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올해 전세계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연초 일본 200만대를 포함, 700만대 정도로 예측됐으나 수요의 급팽창에 힘입어 약 870만대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 일본이 400만대, 미국이 250만대, 유럽이 130만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등 기타 지역이 90만대를 점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시장규모는 2001년에 더욱 폭발적으로 성장, 1200만대를 넘어서며 필름카메라 시장 규모를 능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이처럼 확대일로를 걷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가트너 그룹은 디지털카메라가 이처럼 인기를 끌고 있는 배경을 화질이 크게 개선되고 지난 5년간 지속적으로 가격이 하락한데다 디지털 영상을 자유자재로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PC와 지원 소프트웨어의 보급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디지털카메라가 전통적인 필름카메라에 비해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카메라는 찍은 사진을 LCD창을 통해 바로 확인할 수 있어 촬영된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곧바로 삭제가 가능하다. 사진에 대한 소프트웨어적인 이미징 처리가 가능하고 프린터로 인쇄도 가능하다. PC에 저장해 데이터 관리도 손쉽다.
물론 단점도 있다. 저장장치 용량이 다 찼더라도 컴퓨터에 옮기지 않으면 저장장치를 비울 수가 없다. 필름을 교체하듯 메모리카드를 추가로 구입하면 된다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성장할수록 디지털카메라의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부품인 CCD 제조회사와 메모리카드 생산업체 및 렌즈업체들만 배불린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신제품 출시 경쟁은 그칠 줄을 모른다. 현재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 진출해있는 업체는 AV·PC·카메라·필름·완구업체 등 약 30개사에 이른다. AV·PC업체들은 PC와 접목할 수 있는 기능 위주의 제품에 전념하고 있는 반면 필름·카메라 업체들은 색채 재현력이나 렌즈 성능 및 디자인에 더욱 치중하고 있다.
◇AV,PC업체들도 가세
특히 카메라업체들의 움직임은 눈부시다.
캐논은 올해 디지털 카메라의 생산을 전년대비 4배인 100만대까지 크게 늘릴 계획이다. 캐논은 오는 2003년 디지털 카메라의 세계 수요를 약 2400만대로 예상하고 세계점유율 24%를 확보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다.
올림퍼스광학공업은 3년 전 디지털카메라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는데 지난해 이 부문에서만 매출 805억엔을 기록해 자사 필름카메라사업을 능가한 상태다. 올해에는 약 1200억엔의 매출을 올릴 계획으로 일본에서 25%, 세계시장에서 20%의 점유율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필름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후지사진필름은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초박형 디자인에 MP3와 디지털카메라 기능을 복합화한 모델인 「파인픽스 40i」를 지난 7월 출시해 폭발적 인기를 모으고 있다. 후지사진필름은 올해 디지털카메라의 판매 목표를 전년대비 2배 늘린 250만대로 예상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PC사용자층과 여성 등을 집중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코닥은 지난 9월 독일에서 열린 포토키나 전시회에서 코닥의 올 신제품 시리즈(EZ200, DC4800, DC5000, DC3400, DC3800)의 연장선으로 120만 화소급 보급형 저가 디지털카메라인 DC3200을 선보여 주목받았고 아그파도 스틸이미지 촬영과 영상통신 기능을 갖춘 디지털 카메라인 ePhoto CL20와 CL34를 올 포토키나 전시회를 통해 발표하고 이들 제품을 11월 중순과 12월 중순에 각각 출시키로 하는 등 디지털 시장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다.
즉석카메라로 유명한 폴라로이드사까지 포토키나 전시회에서 중저가 3기종을 동시에 발표했다. 폴라로이드는 MP3플레이어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VGA급 모델 「디지털 MP3 카메라」와 130만 화소 단초점 모델 「PDC 1300」 및 230만 화소급의 PDC2300을 출시해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도 뒤지지 않는 기술력을 자랑했다.
소니는 자사의 독자규격 메모리카드인 메모리스틱을 이용한 디지털카메라를 꾸준히 내놓으며 전자업체로서의 명성을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도 그대로 이어가고 있고 파나소닉은 업계에서 최초로 자체 개발한 메모리인 SD 메모리 카드를 사용할 뿐 아니라 PC전송 및 사용방법이 한층 간편하게 향상된 334만 화소급 디지털카메라 「ipalm(아이팜) PV-DC3000J」를 발표하는 등 카메라와 필름업계에 뒤지지 않는 공세를 펼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CCD 및 메모리카드의 지속적인 가격하락과 소비자의 욕구 증가 및 활용범위를 넓혀주는 각종 디지털장비 및 인프라의 확산으로 인해 앞으로 꾸준한 고성장을 구가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소영기자 s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