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적인 돈가뭄으로 운영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비상장·미등록 벤처기업들이 대주주의 구주매각을 통해 활로를 찾고 있어 주목된다. 신주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지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구주라도 팔아 급한 불을 끄고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특히 신규투자를 자제하고 있는 벤처캐피털·엔젤 등 투자가들이 일시적인 현금흐름(cash-flow)의 난항으로 애로를 겪고 있는 유망 벤처기업들을 주목하고 있어서 벤처업계의 구주거래는 더욱 활기를 띨 전망이다.
◇ 부익부 빈익빈=현재 벤처업계에 매물로 등장하는 구주는 창업(start-up) 및 초기(early stage) 벤처기업부터 코스닥 등록이 임박한 중견 벤처기업까지 다양하다. 특히 자금조달에 한계를 갖고 있지만 인수합병(M &A)까지는 고려하지 않는 기업들이 구주매매를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신주시장과 마찬가지로 구주시장 역시 팔자(seller)는 많은 데 비해 사자(buyer)가 적어 수급 불균형이 심한 상태다. 이에 따라 수익모델과 기술력이 탄탄한 유망 벤처기업들의 주식은 비교적 거래가 활발한 반면 수익기반이 취약한 닷컴기업이나 범용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들의 주식은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 모럴해저드 우려=벤처기업들이 구주매각에 적극 나선 근본 이유는 운영자금의 확보다. 신규 펀딩이나 금융권 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구주라도 팔아 운영자금으로 쓰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구주매각이 회사를 살리기 보다는 개인적인 축재나 새로운 비즈니스 추진을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등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장외주식 거래업체의 한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신주발행으로 들어오는 자금은 회사 몫이지만 구주는 대주주의 몫이기 때문에 개인돈으로 유용할 경우 이를 막을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없다』며 『결국은 벤처기업 경영진이나 대주주들 스스로 애사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제도적 보완점=현재와 같은 벤처투자시장의 냉각이 계속될 경우 상당수 벤처기업들이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흑자도산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구주매각은 투자자들의 원금보전과 회사재생의 수단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부차원에서 신주발행시장 못지않게 구주시장에 대한 제도적인 뒷받침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문종 I &G벤처스 사장은 『구주투자는 일단 법적인 투자실적으로 잡히지 않기 때문에 일정수준의 투자를 해야 하는 벤처캐피털에는 부담이며 결국 벤처투자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힐 수도 있다』며 『벤처산업지원 차원에서 제도적인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