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저 「연어」
연어. 은어와 함께 모천(母川) 회귀성 물고기다. 태어나자마자, 모천을 떠난 치어들은 강물을 따라 폭포를 넘어 바다로 간다. 그리고 무작정 저 먼 알래스카까지 헤엄쳐갔다가 성어가 되면 다시 자기가 태어난 모천으로 거슬러와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이것이 연어의 삶이다.
어느 가을날. 모천에 돌아온 연어들이 주둥이가 헤지고 지느러미가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여울바닥에 산란터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은빛연어의 연인 눈맑은연어도 일생의 단 한번뿐인 알을 낳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름답기 그지없었던 그녀의 눈에는 이제 지나간 시간의 흔적이 가득하다. 그녀는 피곤한지 한숨을 길게 쉬며 은빛연어에게 묻는다.
『너는 삶의 이유를 찾아냈니?』
은빛연어는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그는 이제까지 알을 낳는 일보다 더 소중한 삶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그가 찾으려고 헤맸던 삶의 의미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다른 연어들처럼 강(江)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감을 배웠고 목숨을 걸고 폭포를 뛰어넘어 이제 상류의 끝에 다다랐을 뿐이다.
『삶의 특별한 의미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야. 마찬가지로 희망이란 것도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
오랜 동안 구름과 무지개를 잡으러 떠났던 그가 이제 막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산란터를 다 만든 눈맑은연어가 은빛연어를 부른다.
『이제 알을 낳을 때가 되었어. 은빛연어야, 이리 가까이 와.』
은빛연어는 눈맑은연어와 나란히 산란터 위에 몸을 낮추고 지느러미의 움직임을 멈춘다. 모든 시간이 정지된 듯 주변이 고요하다. 연어가 알을 낳는다는 것은 기나긴 생을 마감한다는 뜻이다. 밀려드는 두려운 생각 때문에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다. 눈맑은연어와의 사랑이 끝난다는 게 더 두렵다. 그것은 또한 그들의 배경이 돼 줬던 강물과의 이별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눈맑은연어야, 우리가 사라진 후에도 강물은 우리를 기억할까?』
『강물을 믿어. 강물을 믿지 못하는 연어는 강으로 돌아올 수 없거든. 아마 우리의 알들도 강물을 믿을 거야.』
『눈맑은연어야,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나면 우리를 까맣게 잊어버리겠지?』
『하지만 잊어야만 훨씬 행복할지도 몰라, 그것이 연어의 삶이거든.』
이윽고 눈맑은연어의 배에서 수많은 알들이 쏟아져 나온다. 은빛연어의 배에서도 하얀 액체가 흘러나와 앵두빛 알들을 하나씩 하나씩 적셔 나간다.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는 지쳐 입을 딱 벌린 채 한동안을 그렇게 누어 움직이지 않았다.
이 마지막 한장의 풍경을 위해 연어들은 5년전 연약한 치어의 몸으로 폭포를 뛰어내렸고 그 차갑고 커다란 바닷속을 거침없이 헤엄쳐 갔다. 그리고 다시 죽음을 무릅쓰고 고향에 돌아와, 죽음을 무릅쓰며 거룩한 죽음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연어」는 어렸을 때 배웠지만 커서는 까맣게 잊고 사는, 「시냇물이 더 큰 강이 되고 나아가 바다가 된다」는 것을 다시 가르쳐주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또한 「인간으로부터 짓밟히지 않으면 존재할 이유가 없는 징검다리」의 의연함이나 「별이 빛나는 것은 어둠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라는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다. 「연어」를 두고 시인 김용택은 『프랑스에는 「어린왕자」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 땅에 잘 어울리는 「연어」가 있다』고 했다.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의 아름답고 슬픈 꿈이 곧 우리들의 꿈이 되어 가슴을 파고든다』고도 했다. 저자 안도현은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가 함께 죽어가면서 자신들이 낳은 알들을 보며 이런 대화를 나눴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한다.
「저 알들은 깨어나기도 전에 벌써부터 북태평양 물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을지 몰라….」
<논설위원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