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벤처기업들이 벼랑에 서 있다고 한다. 분명히 어려운 때다. 그러나 벤처기업은 그 자체가 모험을 전제로 출발한 기업이다. 실패할 위험도 그만큼 크고 성공했을 경우 수익도 그만큼 높은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벤처기업이 성공하기까지 겪게 되는 어려움은 필연적인 것이며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한 때 우리는 어떤 회사인지도 잘 모르면서 남이 벤처에 투자한다면 무조건 따라하던 「묻지마 투자」로 몸살을 앓았다. 이 때는 벤처기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아이디어만 갖고 나서면 자신의 사업에 투자할 창투사나 투자자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품이 빠질수록 창투사들은 벤처에 투자하는 것을 결정할 때 신중할 수밖에 없다. 벤처의 거품이 빠지고 있는 요즘 투자가나 창투사들은 어떤 기준으로 벤처기업에 투자할까. 얼마 전에 미국 실리콘밸리에 가서 미국의 벤처 투자가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투자기준을 보면 우리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들이 첫째로 보는 것은 최고경영자의 자질이다. 새로운 비전과 사업계획에 대한 확신이 있는지를 본다. 많은 새로운 사업계획들이 논의되지만 막상 그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직접 그 사업을 맡아 추진하고 책임지라고 하면 망설이는 경우가 흔하다. 자기의 장래를 걸겠다는 확신이 없다면 그 사업은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할 것이 뻔하다. 그래서 최고경영자가 얼마나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으며 목표를 성취하겠다는 열정과 조직을 이끌어가는 팀 리더십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들은 또 최고경영자의 성실성과 정직함을 살핀다. 이 점은 자본과 경영이 분리될수록 더 중요해진다. 이들에게는 결코 쌈짓돈이 주머닛돈일 수 없다. 그래서 투명한 경영을 요구한다. 미국 벤처 투자가 입장에서 보면 고객 접대비로 100만원 이상을 한자리에서 쓴다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
미국의 벤처 투자가들이 두번째로 따지는 것은 벤처기업의 최고경영자와 함께 일하는 간부진의 자질과 능력 그리고 이들간의 팀워크다. 실제로 일이 추진되는 것은 이들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팀워크는 사업의 성공여부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따라서 최고경영자의 비전이 그의 팀원들과 잘 공유되고 있는지, 그의 팀이 함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지를 따진다.
또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고 보완적으로 도와 전체의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지, 유능한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핀다. 만약 팀원 가운데 투자가가 경력을 후하게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속해 있다면 그들의 신뢰를 얻기가 그만큼 쉽다.
세번째로 이들은 벤처기업의 마케팅전략을 본다. 벤처기업이 목표하는 시장의 크
기가 어느 정도인지, 과연 시장이 사업을 시작할 만큼 충분히 큰지를 알아본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시장자체가 너무 작으면 사업성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시장이 있다고 판단하면 마케팅전략을 검토한다. 경쟁사들에 대한 비교 검토와 그 대책이 잘 되어 있는지,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이 적절한지, 그 전략을 실
현시킬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타당한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이들은 벤처기업이 가진 기술을 검토한다. 이 점이 우리의 기준과 매우 다르다. 우리는 기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미국의 벤처 투자회사들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술은 다른 누군가가 개발했거나 개발 중에 있다고 간주한다. 한발 더 나아가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정말 좋을 경우 필요한 기술은 구매해줄 수도 있다고까지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이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과연 이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지 여부다.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이 때부터 투자규모와 투자조건을 과감하게 결정해 나간다.
그만큼 사람은 투자결정의 우선 순위에 둘만큼 중요한 기업의 핵심이다. 각 항목에 25점씩을 주는데 50점이 최고경영자와 그의 팀원의 자질에 주고 마케팅전략과 기술에 각 25점씩을 준다. 아무리 디지털 기술이 앞서 가더라도 고객에게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시스템은 사람이 결정한다. 그리고 사업의 성공여부는 그 사람들의 능력과 창의력, 일에 대한 열정, 성실성에 달려 있다.
디지털시대에도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비전이 있는 지도자와 그를 돕는 사람만 막강하다면 디지털시대에도 거칠 것이 없다. 그런 사람이 되자.
<한국IBM 마케팅 총괄본부 수석전무 hhkim@kr.ib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