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용산전자상가의 컴퓨터 유통업계에 최근 회사를 정리하고 야반도주하거나 전업·폐업이 잇따르면서 연쇄부도의 공포감이 전 상가에 엄습하고 있다.
그동안 용산전자상가의 PC관련 유통업체들은 지난 2·4분기 이후 시장이 급랭하면서 4·4분기 대란설에 휩싸였으나 매장축소나 인력절감 등의 자구책을 통해 가까스로 고비를 넘기며 버텨왔다.
하지만 최근 용산의 하드디스크드라이브 유통업체인 H사 대표가 회사를 느닷없이 정리, 수십억원을 갖고 잠적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매장 구하기가 어렵던 선인상가에서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한 업체들로부터 매장 매물이 나오고 있어 유통
업계의 자금압박이 최고조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4분기 금강·바울 등 케이스 업체들이 부도로 쓰러질 때만 해도 용산상가에서 빈 매장 구하기가 쉽지 않았으나 이달 들어서는 상가마다 빈 매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고의로 부도를 내고 폐업을 하거나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는 상인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매장이 밀집해 있는 선인상가의 안동환 상우회장은 『호황기때는 매장 구하기도 어렵더니 요즘엔 한달에 30∼40개 매장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며 『이 가운데는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사업을 포기하고 임직원들에게 매장을 넘기는 사례도 상당수에 달한다』고 말했다.
용산전자상가에 컴퓨터 부품을 공급하는 모 업체의 K 사장은 『경영여건이 어려워지자 유통업체 대표나 직원이 환금성이 좋은 CPU나 메모리 등을 신속히 처리해 도주하는 사건이 이달에만 2건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금압박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이는 다음달에는 이같은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처럼 용산전자상가에 찬바람이 일자 용산 일대의 은행권은 각 거래업체들을 상대로 담보물을 아파트처럼 환금성이 좋은 것으로 변경하거나 여신관리를 강화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조립PC업계=조립PC업체들이야말로 가장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 최근 하루매출이 지난 1·4분기의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영세 업체는 그나마 무리하지 않아 큰 위험은 없지만 PC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모 중견 유통업체의 경우는 1·4분기 호황기때 끌어들인 부채와 재고를 아직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어 자금압박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가 4·4분기를 벼텨내지 못할 경우 이 업체와 거래해왔던 부품업체들의 연쇄부도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부품유통업계=메모리 유통업체들의 타격이 심상치 않다. 이미 한차례 타격을 입었던 메모리 유통업체들은 이달 중순 일시적으로 상승세를 보였던 메모리 시세에 기대를 걸었지만 여전히 하향세를 보이면서 업종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PC경기가 호전되지 않자 일부 PC제조업체로부터 메모리가 대량으로 시장에 풀려 기존 재고를 유지해 왔던 업체들은 눈앞에서 큰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매장 구하기가 어렵던 용산전자상가에 매장 매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보드업계=주기판·그래픽카드 등 보드 유통업체들도 요주의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업체별로 적게는 5000장에서 많게는 5만여장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 판매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수익구조는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식이어서 채산성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PC경기 침체로 업체들이 판매부문에서는 저가경쟁을 벌이면서 AS재고는 줄지 않아 업체마다 수천만원에서 수억원대의 재고
를 쌓아두고 있는 실정이다.
<박영하기자 yh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