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용 비디오게임기 시장은 전환기로 들어서고 있다. 네트워크 시대를 맞아 단순 오락기 차원을 넘어 인터넷 단말기로 진화한 고성능 게임기가 등장해 새로운 경쟁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16비트 게임기 「패미컴」의 대성공으로 한때 게임왕국으로 명성을 날렸던 일본 닌텐도도 최근 신제품을 공개하고 차세대 주권 경쟁 대열로의 합류를 공식화했다. 특히 닌텐도는 「플레이스테이션」의 소니에 내주었던 선두 자리를 되찾아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닌텐도의 차세대기 「게임큐브」는 다른 경쟁사 제품과는 기본 개념이나 성격 등 여러 면에서 큰 차이를 보여 업계의 이목을 끈다. 미국의 시장조사 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http://www.strategyanalytics.com)는 닌텐도의 차세대 게임기를 면밀히 분석하고 그 가능성과 문제점들을 제시했다.◆
지난 8월 24일 닌텐도는 「스페이월드 2000」 행사장에서 128비트의 차세대 게임기 「게임큐브(gamecube)」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전까지는 「돌핀」이라는 개발명으로 불렸던 게임큐브는 IBM의 405㎒급 파워PC 프로세서를 탑재하고 「지느러미(flipper)」라는 명칭의 ATI 3차원(D) 그래픽 칩, 40M SD램 등을 장착했다.
소프트웨어를 기록하게 되는 미디어는 직경 8㎝의 광디스크로 마쓰시다전기산업이 개발한 드라이브에서 작동한다. 보조부품으로는 56Kbps 모뎀 1개, 무선방식의 게임 컨트롤러를 위한 무선 추가장치 1개, 64M의 SD(Secure Digital) 카드를 꽂는 2개의 디지카드(digicard), 메모리 슬롯 중 한 곳에 쓸 수 있는 어댑터 1개 등을 포함하고 있다. 또 현행 휴대 게임기 「게임보이」의 차세대기로 게임큐브와 같은 날 공개된 「게임보이 어드밴스(game boy advance)」와 연결해 서로 데이터 교환할 수 있다. 게임보이 어드밴스를 게임큐브의 컨트롤러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게임큐브는 내년 7월 일본시장에 먼저 출시하고 이어 10월에는 미국과 유럽시장에 투입할 예정이다. 이로써 당초 올 12월로 계획했던 상품화 시기는 반년 정도 늦춰지게 됐다.
게임큐브에서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소프트웨어를 담는 저장매체다. 닌텐도는 지난해 5월 마쓰시타와 디지털 네트워크 가전제품 분야에서의 포괄 제휴에 합의하면서 그 세부 사항으로 차세대 게임기를 위한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 미디어와 드라이브 기기의 개발에서 상호 협력하기로 했는데도 최종적으로 채택한 것은 예정과는 다른 포맷의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닌텐도가 현행 주력인 64비트기 「닌텐도64」의 상품화에서 당시 시대의 주류였던 CD 대신 종래의 카트리지 방식 미디어를 선택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이번 차세대에서도 예상밖의 저장매체를 들고 나오지 않을까에 관심이 쏠렸던 것도 사실이다.
게임큐브의 미디어로 마쓰시타의 기술에 기반한 직경 8㎝의 용량 1.5GB 광디스크를 선택한 데 대해 닌텐도는 이렇다할 설명을 하지 않고 있는데, 다음 몇 가지로 그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우선은 보안(security)이다. 일반적으로 하드웨어 사양에만 집중하다 보면 양질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판단을 잃기 쉬운데, 게임기는 콘텐츠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갈리게 된다. 따라서 일단 우수한 콘텐츠를 보유하게 된다면 그 다음으로는 그 콘텐츠를 보호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된다. 일례로 닌텐도는 닌텐도64에서 카트리지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자사 콘텐츠에 대해 비교적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CD 방식을 채택한 소니나 세가는 계속해서 콘텐츠의 불법 복제에 시달려 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닌텐도는 이번 차세대기에서 DVD를 포기한 것으로 분석된다.
둘째는 용량의 효율성 문제다. 닌텐도의 야마구치 히로시 사장은 현대 게임은 너무 덩치가 커서 개발하거나 다루기가 어렵다고 말하는데, 바로 이런 생각이 미디어 포맷 선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1.5GB의 디스크는 나중에 용량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지금까지는 플레이스테이션2 등과 같은 4.7GB의 DVD를 채택한 하드웨어가 그 용량을 모두 효율적으로 활용하지는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닌텐도는 게다가 이번에 소형 디스크를 선택함으로써 자사의 비용은 물론 개발자의 비용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DVD의 생산이 크게 늘어남으로써 생기는 경제의 규모 효과가 크기 때문에 개수 기준으로 비교할 경우 8㎝ 디스크보다는 12㎝ 디스크 쪽이 비용 면에서 더 유리할 수도 있다.
셋째는 마켓 포지셔닝(수요 대상)이다. 닌텐도가 게임큐브에 DVD 비디오를 제공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닌텐도가 고집스럽게 내세우고 있는 「게임 중시」 원칙과 일치하는 것으로 다른 경쟁제품 즉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년 가을 내놓을 예정인 X박스 등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다. 이는 닌텐도가 선택한 시장이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목표로 하고 있는 시장과는 다소 다르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펼쳐나가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문제는 닌텐도가 겨냥한 시장의 규모, 또 수익이 어느 정도나 될 것인가다.
독특한 저장 매체와 함께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특징은 게임큐브와 게임보이 어드밴스가 여러 방법으로 결합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들 두 게임기는 상호 데이터 전송이 가능하고, 게임보이 어드밴스를 게임큐브의 컨트롤러로 사용할 수도 있다. 현재 게임보이는 세계 휴대 게임기 시장을 완전히 장악(일본 시장 점유율 90%, 미국과 유럽 점유율 99%)하고 있다. 때문에 닌텐도가 앞으로 사업의 중심축을 가정용 게임기에서 휴대 게임기로 옮길 것으로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 가능성은 매우 높다. 지금까지 게임보이를 구입한 사람은 1억명이 넘는데, 이 중 단 1%만이라도 호환성이 있는 차세대 기종 게임보이 어드밴스로 업그레이드한다 해도 그 수요는 1000만명 이상으로 엄청나다. 이렇게 될 경우 게임큐브는 게임보이 어드밴스의 주변장치로 더불어 성장할 가능성이 짙다.
게임 시장의 발전에 대해 닌텐도의 견해는 소니나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다르다. 두 회사가 게임을 고정의 광대역 네트워크 관점에서 보고 있는 데 대해 닌텐도는 금후 게임 시장의 성장은 모바일 분야가 주도할 것으로 믿고 있다. 최근 닌텐도가 자사 게임을 휴대폰 서비스에 제공키로 하고 이동통신 사업자와 제휴를 맺은 것이 좋은 예다. 따라서 닌텐도는 게임큐브보다도 게임보이 어드밴스에 더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닌텐도는 게임보이 어드밴스와 게임큐브를 연계할 수 있도록 하면서 자연스레 집안에 앉아서 뿐 아니라 이동중에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서 동시에 온라인 게임이라는 새로운 시장도 가시권에 끌어들이고 있다.
게임보이 어드밴스와 게임큐브에 부착된 모뎀을 이용하면 인터넷을 통해 서로 연결하여 게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데이터를 교환하고 캐릭터를 다운로드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것들은 다른 모든 차세대 게임기의 기능과 일치하는 것으로는 온라인 게임이 날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에 부응한 결과다. 이런 추세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는 다름아닌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가정의 네트워크화다. 가정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면 게임기와 디지털TV를 통한 온라인 게임은 무한한 성장성을 갖게 된다. 물론 게임큐브는 그 시장을 조준하고 있다.
게임큐브의 특징들에 나타난 닌텐도의 차세대 게임기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인터넷 접속 등 비본질적인 기능을 지양하고 순수 게임기로서의 정통성을 강조하겠다는 점이고, 둘째는 휴대 게임기 분야에 집중하고 가정용 게임기는 휴대 게임기의 주변 장치로 전개해 나가겠다는 점이다. 이 결과로 닌텐도는 게임기의 가치가 가정용보다 낮은 휴대기에서 보다 많은 매출을 올려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그러나 게임기로서 닌텐도 차세대기의 가능성은 높은데, 닌텐도가 기존 게임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과 맺고 있는 친밀한 관계를 토대로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한편 지금까지 나온 닌텐도 차세대기의 특징만으로 보면 마쓰시타는 지난해 닌텐도와 맺은 사업 제휴에서 특별히 얻은 것이 없다. 특히 DVD를 차세대 게임기의 미디어로 삼게 해 활성화시키려 했던 의도는 사실상 물거품이 돼 버렸다. 이미 경쟁사인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2에 DVD 기능을 연계해 이 부문에서 상당히 앞서 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마쓰시타가 앞으로 닌텐도와의 제휴를 유지하면서 특별히 득볼 일도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마쓰시타는 다른 업체와의 제휴를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