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정부법안 갈등-부처와 각계 반응

전자정부에 관한 법률안을 놓고 행자부와 입법부 그리고 직접적인 이행 당사자인 정보통신부의 입장이 미묘하다. 행자부는 입법예고를 통해 법제처 심사를 받고 있는 마당에 입법화를 추진하는 의원 측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반면 이상희 의원측은 법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큰 틀의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론을 고수하며 밀어붙이기에 나서고 있다. 정보통신부 역시 간신히 전자정부법안을 제한된 법령으로 축소시켜 놓은 마당에 의원입법으로 몰아가는 의원들의 움직임에 대해 떨떠름한 표정이다.

특히 행자부는 장관이 직접 전자정부법(가칭)의 연내 법제화를 공언한 만큼 난감한 표정이 역력하다. 행자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전자정부법의 법제화를 제1의 과제로 선정, 보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상희 의원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이 최선의 법안을 내놓을 것을 다짐하고 관련부처간 협의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어 오히려 새로운 통합안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행자부나 정통부 역시 전자정부관련법이 소관 상임위로 각기 올라가는 것을 원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 국회 입장 =행자부안은 행정부처의 업무에 관한 규정만을 포함하고 있어 원래의 전자정부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온라인 국정감사·온라인상임위·온라인선거·온라인재판 등에 관한 규정을 담아 앞으로 다가올 디지털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입법·사법부를 포함한 전 국가기관에 관한 사항을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전자정부 추진을 위한 상위개념의 전자정부추진단이 별도로 구성돼야만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상희 의원측은 『지난 19일 1차법안보다 다소 내용을 보완한 법안을 조만간 내놓을 방침』이라며 『이번 국가기관의 전자정부에 관한 특별법(안)의 입법화는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김근태·정동영·허운나 의원 등이 참여할 예정이며 자민련에

서는 강장희 의원이, 한나라당에서는 김용균 의원 등이 참여해 공동 발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 행자부 입장 =지난 2년간 학계와 업계의 연구작업을 거쳐 만들어 놓은 전자정부법을 입법 예고한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의원입법으로 국가기관의 전자정부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의도가 뭐냐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전자정부법안은 지난 97년부터 끊임없이 입법화를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 동안 부처간 논의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또 다시 입법단계에 접어들면서 논쟁을 벌이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고 있다. 또한 부처이기주의라는 비판이 일 소지가 있는 「전자정부추진단」이나 「전자정부기금」에 관한 조항을 빼면서까지 정보통신부와의 합의안을 도출해 냈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시 중복입법이란 명제에 부딪치게 됐다는 설명이다.

행자부는 전자정부의 목적이 행정업무의 생산성 향상과 대국민서비스의 개선에 있는 만큼 먼저 전자정부법을 입법화하고 필요하다면 점차 보완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 정통부 입장 =정보통신부는 기본적으로 기존의 정보화촉진기본법의 테두리안에서 전자정부를 구현하자는 입장이다. 정보화촉진기본법이 국가사회의 정보화 전반을 포괄하고 있는 법규정이니만큼 별도의 법제정은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보통신부는 최근 행자부에서 민원행정과 문서처리에 관한 한정된 범위의 법규정으로 전자정부법(안)을 성안해 들고 나옴에 따라 이의 법제화를 묵인하는 방식으로 찬성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통신부는 상당히 난감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겨우 행자부안을 행정정보화에 한정된 법조항으로 묶어놓은 마당에 이상희 의원이 의원입법 형식의 전자정부에 관한 법안을 마련, 법제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다는 정보통신부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그러나 정보통신부의 관계자는 이상희 의원의 입법화에 속앓이를 하고 있으면서도 전자정부에 관한 법이 정보화촉진기본법의 하위 법률로 제정돼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겠다고 밝혔다.

◇ 학계 입장 =학계에서는 이상희 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전자정부에 관한 법률안이 제대로 된 법조항만 담을 수 있다면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학계 관계자들은 행자부가 마련한 전자정부법이 부처간 타협의 산물이라며 국가기관의 전자정부 구현에 관한 특별법(안)은 진정한 의미의 전자정부법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입장이다. 행자부의 안이 원래의 취지와는 달리 행정문서에 관한 사항을 주로 담고 있는 것은 현실적인 취지에서는 이해가 가지만 원래의 전자정부법 입법 취지에서 보면 제한적인 법규정이라는 지적이다.

외국어대 황성돈 교수는 『전자정부법은 원래 전자법원·전자국회·온라인국정감사 등 입법·사법·행정부를 포괄하는 법안이 돼야 한다』며 『행정부와 국회에서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소관상위 다툼으로 입법화 자체가 유야무야 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