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금융시장 총체적 냉각 가속 우려

한국디지탈라인 정현준 사장의 불법대출비리가 일파만파로 확산되면서 그동안 금융시장 불안으로 꽁꽁 얼어붙었던 벤처투자시장이 더욱 냉각돼 벤처업계 전반의 자금난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30일 벤처기업 및 벤처금융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정현준게이트를 계기로 벤처업계 전반의 불법 및 비리와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 현상에 대한 총체적인 긴급점검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벤처캐피털을 비롯한 벤처투자가들이 신규 벤처투자를 사실상 중단, 가뜩이나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던 벤처기업들이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 벤처캐피털=창투사·신기술금융사 등 벤처캐피털업계는 정현준게이트가 결국 금융불안을 가속화하고 벤처업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더욱 확산시켜 신규투자를 가급적이면 억제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기관과 일반 법인들의 자금유입이 줄어들어 벤처펀드 조성까지 차질을 빚으면서 대부분의 벤처캐피털업체들이 「개점휴업」 상태다. 한국IT벤처투자 안재홍 사장은 『벤처붐이 정점에 달할 때 회사채 발행 등 외부에서 자금을 차입, 투자한 업체들을 중심으로 최근들어 위험수위를 넘은 업체가 상당수에 달한다』며 『정현준게이트로 인해 이같은 분위기가 더욱 고조돼 업계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 기관=그동안 코스닥등록이 가시권안에 들어온 「프리코스닥」업체를 중심으로 벤처투자를 주도해온 은행·종금·증권·투신·보험 등 기관투자가들 역시 정현준파동이 금융시장 냉각과 벤처회의론 고조 등 벤처업계에 큰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신규투자에 지극히 소극적으로 대처할 조짐이다. 기관들은 특히 벤처투자가 본업이 아닌 만큼 당분간 관망을 하되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위험이 적은 쪽으로 투자를 선회하고 있다.

◇ 일반법인 =이번 정현준사건은 일반법인들의 벤처투자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동안 코스닥 침체로 벤처캐피털과 기관들의 투자가 줄어들면서 일반 법인들이 벤처투자시장을 주도해왔다. 특히 한빛소프트 등 대규모 펀딩기업이나 코스닥등록으로 자금을 확보한 기업들은 벤처조정 장기화로 자금난에 봉착한 유망 벤처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투자에 나섰다. 그러나 정현준게이트에 따른 후속수사의 타깃이 지주회사를 표방한 법인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여 법인들의 투자에 치명타를 가할 전망이다.

◇ 개인=시장의 움직임에 가장 민감한 쪽은 개인이다. 개인들은 이미 지난 2·4분기 이후 벤처투자가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이다. 특히 주식시장 침체로 자금이 묶이면서 개인들의 주머니사정도 넉넉하지 않다. 게다가 개인투자자에서 지주회사를 통한 벤처그룹 총수를 꿈꾸던 정현준사건이 터져 개인들의 투자 역시 더욱 소극적인 자세로 전환될 것이 확실하다. 최근 엔젤마트를 개최했던 한능엔젤그룹의 김철우 국장은 『이제는 바닥권이라는 인식아래 엔젤마트를 열었으나 엔젤들의 반응이 썰렁했다』며 『이제 지난해와 같은 「묻지마 투자」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 벤처업계=「노심초사」 벤처업계는 정현준게이트의 불똥이 벤처금융업계 전반으로 확산돼 벤처기업의 자금조달시장이 사실상 마비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매출실적이나 수익이 미진한 초기 벤처기업들은 펀딩은 물론 금융기관을 통한 대출까지 어려워 발만 구르고 있다. 2∼3차 펀딩을 추진중인 업체들도 1차 펀딩에 참여한 기관까지 추가투자를 하지 않아 자금조달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벤처업계에는 이에 따라 벤처기업협회 등 관련단체를 통해 정현준사건을 개인적인 사건으로 치부하고 사태확산 방지에 주력하고 있으나 시장이나 일반적인 인식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