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방송 업계는 크게 케이블TV방송국(SO)과 프로그램공급업체(PP), 전송망사업자(NO)로 나뉜다.
SO는 1, 2차 사업자 선정 과정을 거쳐 총 77개 업체가 방송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PP는 지난 5월 허가받은 신규 PP 15개사를 포함, 총 44개사에 달한다.
지난 95년 3월 첫방송을 시작한 케이블TV업계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장밋빛 희망속에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시행 초기부터 가입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다 IMF로 극심한 경영난에 빠지는 등 당초 기대와 달리 수많은 고비를 넘겨야 했다.
이로 인해 초창기 이 사업에 참여했던 경영인들이 대부분 중도하차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케이블TV산업에 대해 정확한 이해도 없이 성급하게 뛰어들었던 기업들이 물러나고 장기적인 비전과 전문성을 갖춘 기업들이 새롭게 가세하는 등 내실을 다지는 기간이 됐다.
케이블TV방송계는 경영난에 허덕이면서도 지상파 일변도의 방송산업에 전문방송이라는 새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아직까지 가입자수가 200만가구를 넘지 못하고 있으나 신규 PP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방영되는 내년부터는 다양한 시청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나가면서 자리를 잡아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케이블TV산업을 태동시킨 것은 지상파방송사가 아니라 대기업과 광고대행사들이었다. 초기 PP 설립업체를 보면 삼성·현대·대우·동아·진로 등 당시 30대그룹에 속했던 굵직굵직한 대기업이 많다.
이들 대기업은 88올림픽 이후 광고물량이 폭주하면서 지상파방송사들이 광고를 다 수용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직접 방송사를 만들어 부족한 콘텐츠를 확보하자」는 취지로 케이블TV방송산업을 만든 것이다.
방송광고 수요가 넘쳐 이를 소화하기 위해 케이블방송산업이 태동한 셈이다.
이에 따라 당시 PP는 제일기획·금강기획 등 홍보대행사와 대기업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그래서 초창기 PP 사장들은 대부분 홍보대행사나 대기업 임원이었다. 이들 대기업과 홍보대행사 출신 PP 사장들은 몇 년 동안 심각한 경영난을 겪다 지금은 대부분 회사를 떠났고 회사 경영권도 타 업체로 넘어간 상태다. 이들은 본사로 돌아갔거나 케이블TV와 관련없는 업종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대변해 주듯 지난 93년 만들어진 PP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5명의 회장 가운데 2명이 케이블업계를 떠났다.
제일기획 사장으로 초대 협의회장을 지냈던 윤기선씨는 Q채널 사장으로 케이블TV업계에 뛰어들었지만 제일기획이 케이블사업을 포기하면서 물러났고, 금강기획 사장이었던 채수삼씨도 4대 회장을 역임했지만 금강기획이 케이블TV사업을 정리하면서 이 업계를 떠났다.
반면 2대와 3대 회장을 지낸 김지호씨와 백인호씨는 아직도 센추리TV와 YTN 사장으로 PP업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홍보대행사나 대기업에 속해있던 대표이사들이 물갈이된 반면 실무를 담당했던 인물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초창기 실무자로 아직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인물로는 온미디어의 김성수 상무와 웨딩TV의 김현대 상무, 드라마넷 김동진 국장, HBO(구 캐치원) 김태관 본부장 등을 들 수 있다. 김성수 상무와 김현대 상무는 각각 제일기획과 금강기획 출신으로 광고대행사 인맥을 대표하고 있다. 김태관 본부장은 삼성물산 출신이며 김동진 국장은 광고대행사 관련업체에서 일하다 케이블TV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이들은 실무에서부터 시작해 상무와 본부장 등 핵심 임원으로 자리잡는 등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PP업계를 이끌어 왔다.
사장급으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PP업계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센추리TV의 김지호 사장(65)을 들 수 있다.
김 사장은 1차 PP로 선정된 센추리TV의 사장으로 2대 PP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정력적인 활동을 벌여 왔으며 최근에는 신규 PP로 환경·쿠킹채널 사업권을 따내 지금은 2개 PP를 거느리고 있다.
김 사장은 대기업이나 광고대행사 출신이 아니라 정부 공무원 출신이라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20여년 동안 외자청과 재무부 등 정부 관료로 해외에서 주로 근무했던 김 사장은 82년 미국에서 케이블TV업체의 컨설팅 업무를 한 것이 인연이 돼 지금껏 20여년간 케이블TV방송산업에 몸담아 오고 있다.
인기는 없지만 꼭 필요한 방송을 만들어 사회적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그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극심한 경영난 속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등 PP업계의 어른으로 가장 존경을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PP협의회 제5대 회장을 맡고 있는 리빙TV 정창기 단장(61)은 64년 동아방송에 입사한 이후 KBS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는 등 지금까지 30여년 동안 방송계를 떠나지 않았던 인물로 PP업계에서는 보기 드문 전문 방송인 출신이다.
정 단장은 95년 교통관광TV(현 리빙TV) 제작본부장으로 케이블TV업계에 발을 디딘 후 그동안의 방송경력을 활용해 방송수준을 높이는 데 많은 공헌을 해왔다.
이외에 동양 계열의 온미디어 담철곤 부회장(46)도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PP업계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
담 부회장은 동양그룹 내에서 워낙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PP업계에 직접 나서는 일이 별로 없다. 대신 제일기획 출신인 김성수 상무가 일선에서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온미디어는 그동안 대우 계열의 시네마네트워크, 중앙방송의 캐치원을 인수하는 등 꾸준히 세를 확대시켜 오고 있으며 이 모든 사업을 김 상무가 중점적으로 추진해 왔다.
언론사 출신 PP로 매일경제TV(채널명 MBN)의 장대환 사장은 매일경제TV와 매일경제신문을 소유하고 있는 오너로서 양사의 사장을 겸임하고 있어 89년 취임 이후 현재까지 변동없이 사장직을 맡고 있다. 그러나 연합통신이 설립한 YTN의 경우 대부분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선임되는 경우가 많아 케이블TV업계에 잠깐 있다가 다른 분야로 자리를 옮겨 오래 남아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초창기 PP 리더들이 대부분 중도하차함에 따라 2개 이상의 PP를 소유한 MPP들이 대거 등장, 활발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신진으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사람은 m·net의 박원세 사장(47). 박 사장은 지난 77년 제일제당에 입사한 이후 제일제당 인사부·관리부·기업문화·음료사업 등의 분야에서 한우물을 파온 오리지널 제일제당맨이다.
제일제당 케이블TV방송산업의 선봉장인 박 사장은 97년 4월 m·net 대표로 케이블TV업계에 발을 디딘 후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사업을 확장해 오고 있다.
최근에는 요리 전문채널인 「채널F」를 개국했으며 드라마 전문채널로 특히 주부 시청자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넷」과 영 트렌디 감각 패션채널인 「Look TV」 등의 총 사령탑으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경영을 펼치며 제일제당그룹의 미디어사업을 이끌어 가고 있다.
코오롱의 민경조 사장(58)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코오롱은 초창기 케이블TV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다 IMF로 사업을 축소했지만 최근 스포렉스의 사업부서 형태로 운영돼온 케이블TV사업부문을 독립시킨 월드와이드넷을 설립하는 등 공격적인 활동으로 돌아섰다.
코오롱건설 등 4개 계열사 대표를 맡고 있는 민 사장의 뒤에서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사람은 정훈 전무. 정 전무는 TBC PD로 방송계에 첫발을 디딘 이래 KBS·EBS·SBS 등의 다큐멘터리 PD직을 두루 거친 후 95년 당시 A&C코오롱의 이사로 영입되면서 케이블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부터 계속 월드와이드넷(구 예술영화TV)의 전반적인 업무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밖에 최근 정보통신채널을 개국한 태광산업 이호진 부회장(39)도 PP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칠 기대주로 부상하고 있다.
탄탄한 자본력을 자랑하는 태광그룹은 e채널을 시작으로 SO와 PP를 모두 거느린 MSP로 회사를 성장시켜 나간다는 전략아래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보수적인 기업으로 유명한 태광을 케이블TV산업에 끌어들인 인물은 e채널의 김영식 부사장. 안양 지역에서 케이블TV방송사업을 해온 김 부사장은 씨에이블이라는 정보통신 PP 준비업체를 설립해 국내 처음으로 정보통신 PP를 탄생시켰으며 태광을 대주주로 영입,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