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명문>시장을 금하면 시민들이 무엇으로 자활(自活)하겠습니까

김대길 저 「시장을 열지 못하게 하라」 중

『외방의 시장에 축말(逐末, 상인, 장사)하는 백성이 많고 도적 또한 번성하기 때문에 나라에서 이를 금하였습니다. 지금은 흉년이 심하게 들어 민간에서의 유무교역은 반드시 시장에 힘입어 서로 바탕으로 삼는데, 지금 또 시장을 금하면 시민들이 무엇으로 자활(自活)하겠습니까? 신이 보건대 금년에 재해를 당한 곳에는 벼가 모두 썩었고, 밭곡식 또한 폭풍과 냉우(冷雨)의 피해를 입어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습니다. 예로부터 흉년이 든 해에는 또한 시장을 금하지 않아 이로 하여금 서로 도와가며 급한 것을 구제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흉년을 당하여 시장을 일절 금지하면 백성들이 심히 원망할 것이니 금하지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것은 퇴계 이황 선생이 조정에 낸 상소의 일부분이다.』

메모 :역사적으로 시장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조선 성종 때인 15세기 후반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양반관리들은 시장의 확산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 퇴계는 시장을 열어야 흉년을 맞은 백성들이 살 길이 있다고 하였다. 이는 퇴계 이황이 시장의 사회·경제적 기능을 십분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고래로 시장은 기본적으로 상품이 거래되는 곳이었지만, 사교의 장이기도 했고, 여론이 형성되는 장이었으며, 유익한 생활정보를 얻어 들을 수 있고,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전해 들을 수 있는 장소였다. 이제 상품을 사고 파는 형태도 달라지고 있다. 전화나 인터넷만으로도 상품을 팔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역사상 민초들의 애환이 어린 시골장처럼 인터넷 상점도 인간냄새가 나는 따뜻한 공간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고은미기획조사부장 emk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