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부품.소재산업 르네상스를 위하여>16회-해외편(3);독일

독일은 도시와 농촌,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국가다. 나지막한 구릉이 펼쳐 있는가 하면 금방 소도시가 나타난다. 소도시 근처에는 유서깊은 성이 있고 첨단 연구소와 공장들이 인접해 있다. 샐러리맨들이 옆집 공장에서 가내 수공업으로 만든 소세지로 아침을 먹고 첨단 전기자동차로 회사에 출근하는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이렇듯 독일은 외형적으로도 쉽게 그 다양성을 알아볼 수 있다. 근대 독일은 풍부한 자원을 기반으로 정부의 강력한 주도아래 산업혁명을 일으켜 20세기 초반에는 유럽 최대의 공업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국가보다 지방분권화가 가장 잘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양성에 대한 「균형과 조화」가 지금의 독일을 있게 한 배경이 된 셈이다.

산업부문도 다채롭기는 마찬가지다. 벤츠·지멘스·니베아 등 기계·발전·자동차·화학 분야 대규모 기업이 있는가 하면 대만과 함께 중소기업이 산업의 근간이 되는 나라로 손꼽힌다.

독일은 이외에 전문화로 유명하다. 누구나 참여하는 업종에 뛰어들기보다는 틈새를 찾는 노력에 더 치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폐쇄적이지 않은 나라가 독일이다. 조금이라도 배울 점이 있다면 국가의 대소, 경제적 빈부를 가리지 않고 제휴와 협조를 이끌어낸다.

전문가들은 이런 합리성이 독일이 2세기에 걸쳐 선진국의 지위를 이어가게 하는 근간이 됐다고 평가한다.

최근 들어 독일은 통일 후 미래를 지식기반 산업에 두고 여기에 주력하고 있다. 21세기를 맞아 산업의 비중을 첨단 전자·정보통신·생명공학 등 하이테크쪽으로 집중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베를린 시내에 마련된 WISTA 과학기술센터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동서 유럽을 연결하는 산업단지인 WISTA 과학기술센터는 기존 과학연구소와 베를린공대 등 베를린 시내 3개 대학, 첨단 기업들의 공동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들을 연결해 하이테크 분야 연구결과가 신속하게 시장성 있는 상품으로 출시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시너지를 통한 산업기술 혁신을 기할 수 있다.

이 센터의 관계자는 『총 4300만마르크(236억원)이 투자될 이번 단지에는 160여개의 업체가 입주할 것』이라면서 『현재 14개 연구기관을 유치하고 저명인사 영입에 나서고 있어 올해 안에 유럽 내에서 가장 현대화된 회사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다.

이와 함께 WISTA 과학기술센터는 신규 창업자들에게 환경을 제공, 창업열기를 유도하기 위해 이노베이션센터를 두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이노베이션센터에 대해 『말 그대로 기술혁신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신생업체로서 부담이 큰 마케팅까지 연결시켜준다』고 설명한다.

이노베이션센터의 역할은 무엇보다 동·서 유럽을 연결하는 기업들의 사업을 원활히 연결하는 데 있다. 기술을 통한 동서간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는 또 업체들에 대한 입주 우선권으로 알 수 있는데 특히 독일정착 기업은 물론 동구권 기업들이 먼저 입주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통일, 나아가 북방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 및 정부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여기에서는 또 사업에 뛰어든 신규 업체들에 시장상황과 관련한 정보를 수시로 제공해주는 경영과 판촉 등에 대한 서비스도 제공한다.

특히 기업가로서 갖춰야 할 개인적·전문적·상업적 적성까지 파악하고 다른 입주기업과의 조화 의지까지 판단한다.

베를린이 독일 북부의 중심도시라면 뮌헨은 남부의 거점도시. 남부유럽 냄새가 물씬 풍기는 뮌헨은 베를린에 비해 옷차림만큼이나 사람들도 개방적이다. 뮌헨에 소재한 유럽 최대의 전자부품업체 엡코스의 홍보담당인 하인즈 칼러트 박사 역시 활달하다.

그는 『엡코스가 커패시터를 비롯해 서미스터·배리스터 등 세라믹 부품, 표면탄성파(SAW)관련 부품, 페라이트 등 수동전자 부품 분야에서 유럽 최대의 업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 89년 지멘스가 일본 마쓰시타와 50대50으로 공동 투자해 설립한 엡코스는 이들 수동부품을 생산해 AT&T·노키아·에릭슨·알카텔 등 정보통신업체에서부터 ABB·보쉬·오스람 등 전통 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체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독일은 물론 미국·중국·인도 등지에 생산설비를 두고 있으며 지난해 말 현재 종업원 수는 1만2000명에 달한다.

엡코스는 특히 지난 98년에는 일본 업체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한 세계 수동소자 시장에서 일본 마쓰시타·무라타에 이어 세계 3위의 매출을 올린 바 있다.

칼러트 박사는 『지멘스가 반도체 분야에서의 우위를 믿고 새로운 투자를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성공을 거두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항상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당시 지멘스로서는 힘든 결정이었다』고 밝힌다.

이미 성공한 업체의 자신감보다는 도전에 대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