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굴뚝산업의 대명사 공단이 디지털로 재무장, 아날로그로 시대의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떨쳐내고 첨단 이미지로 탈바꿈하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다.
구로공단과 안산공단 등에 입주한 중소 전자부품업체들의 업무환경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기업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전사적자원관리(ERP)를 도입하는 업체들이 늘어나면서 지금까지 일일이 수작업에 의존해왔던 재고관리 업무를 전산화해 작업량을 절반 이상 줄였다.
일부업체들은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국의 구매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구매비용을 크게 낮추기도 했다.
기업들뿐만 아니라 공단 자체도 디지털과 인터넷이라는 21세기의 거세 물결을 거스르기보다는 이를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기업들의 집적화단지였던 공단은 아날로그 시대의 산물. 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일등공신이다. 공단의 불빛에 따라 우리나라 경제도 춤을 췄을 정도다.
산업단지는 설립목적과 지정·관리권자에 따라 국가산업단지, 지방산업단지, 농공단지 등으로 분류된다. 현재 전국에 국가 32개, 지방 156개, 농공 295개 등 총 483개의 산업단지가 있는데 대부분 지방에 있다.
아직도 이들 산업단지는 총수출의 60.7%, 국내 총생산의 54.5%, 제조업 총고용의 21.6% 등을 감당하는 등 국가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흔히 우리가 공단이라고 부르는 대표적인 공단은 한국산업단지가 관리하는 구로공단과 반월·시화공단, 창원공단 등 25개 단지.
여기에 입주한 업체와 인력이 1만1578개사에 49만5064명이다. 25개 단지의 올해 생산목표는 152조9220억원이며 수출목표는 580억9000만달러. 이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공단이 굴뚝산업의 대명사임을 잘 알 수 있다. 업종별로는 기계가 38.7%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전기·전자가 14.3%로 뒤를 잇고 있다. 석유
화학, 운송장비, 목재, 종이, 비금속, 섬유의복, 철강, 음식료 등의 순이다.
단지별로는 구로, 남동, 반월·시화 등 수도권 단지들이 경공업 위주로 구성돼 있어 중소기업 및 대기업 협력업체가 밀집해 있다. 여천, 구미, 울산, 온산, 당진 등은 대기업 및 대규모 장치산업 위주로 구성됐다.
공단간에도 명암이 갈리고 있다. 장치산업 위주의 단지들은 90%를 넘는 높은 가동률을 보이는 데 반해 경공업 중심의 단지들은 가동률이 80% 안팎에 머물고 있다.
전형적인 아날로그의 산물인 공단이 21세기들어 디지털로 바뀌려 한다. 정부가 앞장서 기업들이 몰려있는 단지들의 특성을 활용,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먼저 디지털화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 중소기업청 등이 그동안 시범적으로 산업단지의 디지털사업을 펼쳐왔다. 산업자원부는 이달 21일 전국 산업단지의 구조고도화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를 기점으로 산업단지의 디지털화 작업이 이뤄져 올해 말을 전후해 전국 각지의 공단이 디지털의 면모를 하나둘씩 갖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산자부·정통부·중기청 등 각 부처가 추진하는 산업단지 디지털화 계획의 핵심은 일치한다. 산업단지내에 초고속망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ERP 등의 ASP서비스를 제공해 입주업체들이 정보경영을 실현하도록 지원하는 것.
특히 사이버 커뮤니티를 형성시켜 입주기업은 물론 인근지역의 대학과 연구소, 지자체, 관련단체 등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한 지식기반을 구축한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목표다.
그동안 홀로서기로 현상유지에만 급급해온 중소기업들이 대학이나 연구소, 지자체, 관련단체 등의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산업단지의 경쟁력을 한차원 높이겠다는 발상이다.
또 하나는 공단을 굴뚝기업에서 첨단기술업종으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산자부는 각 산업단지를 특성화하고 섬유·봉제·기계·금속 등 노동집약적 제조업종 중심이던 산업단지를 첨단 기술집약적인 업종 중심으로 점진적인 구조고도화도 추진할 방침이다.
그 중심에 벤처기업이 있다. 산자부는 최근 구로단지내에 키콕스벤처센터를 개관하는 것을 계기로 구로공단의 이름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바꾸고 고도기술·벤처·패션디자인·지식산업 등 4개 첨단업종으로 재배치할 계획이다. 이를 기점으로 점차 시화·안산공단, 남동공단, 창원공단, 구미공단, 대불공단 등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산자부 산업입지환경과 안현호 과장은 『키콕스벤처센터 개관식 행사를 준공식대신 새이름 선포식으로 하기로 했다』며 『이는 산업단지의 구조고도화 계획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정부의 디지털화 계획은 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들이 지식과 정보를 생산·가공·저장·유통함으로써 해당지역에 속한 다양한 경제주체들간에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생산성을 혁신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관련업계에서 주목하는 것은 산업단지의 디지털화가 소프트웨어나 인터넷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 서울벤처밸리(테헤란밸리)와 달리 첨단 제조업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상대적인 박탈감과 빈곤감을 느껴오던 제조업체들의 자신감 회복과 국내 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 최근 키콕스벤처센터에 입주한 전자부품 사이트 운영업체인 아이티프
로콤의 정재득 사장은 『전자부품업체와 세트업체들이 밀집한 구로공단에 위치한데다 첨단 인프라까지 갖춘 키콕스벤처센터에 입주해 만족스럽다』며 『낙후한 산업단지에 초고속정보망 등의 인프라가 광범위하게 보급된다면 큰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산업단지 디지털화사업이 차질없이 마무리된다면 어렵사리 21세기의 문턱을 넘은 한국경제가 다시 한번 도약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