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계 정보통신계의 이목은 온통 내년 서비스가 시작될 3세대(3G) 이동통신 IMT2000에 쏠려 있다. 새로운 거대 시장의 탄생과 함께 경쟁 환경도 바뀌면서 관련 업체의 희비가 복잡하게 얽히는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업계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역은 시장성이 가장 큰 중국을 비롯 이동전화 보급률이 높은 싱가포르와 호주 등 아시아권이다. 이들 3국의 3G 관련 주요 동향을 시장조사 업체 피라미드리서치(Pyramid Research http://www.pyr.com) 보고서를 통해 살펴본다.
◇중국 =중국에서는 콘텐츠와 단말기의 부족에 높은 통화료 등으로 3G 서비스가 조속히 이뤄지기는 힘들 것이다. 중국의 3G 개시는 아무리 빨라야 2003년이고, 그 이후도 보급속도는 빠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전망이다. 2003년에는 중국 전체 휴대폰 가입자중 1%(177만명)가, 2005년에는 2%(940만명)가 3G를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에서는 3G 서비스 개시 이후에도 상당기간 2G와 2.5G가 병존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국가 인프라 구축 목표와 맞물려 있는 2G는 앞으로도 장기간 꾸준히 발전할 것이다. 중국 정보산업부가 국영 차이나모바일을 통해 인프라 정비를 적극화하면서 2G 보급도 크게 늘고 있다. 2005년에는 2G 가입자가 2억240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최대 관심사인 기술규격 채택 문제는 매우 불투명한 상태다. 중국 정부는 어떤 3G 표준을 채택할지 또 2개 이상의 표준을 허용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고 있다. 정보산업부 또한 3G 서비스 라이선스 기준이 어떻게 될지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표준으로 가장 유력시되는 규격은 TD-SCDMA. 이것은 독일 지멘스와 일부 중국 현지기업들이 공동개발한 3G 기술규격으로 이미 전기통신연합(ITU)에서 표준으로 승인받았다.
이 규격에 대해선 최근 현지 및 외국업체 7개사가 모여 상호 의견 교환과 3G 무선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을 표방하며 「TD-SCDMA 포럼」을 발족시켰다.
이 포럼은 지멘스를 비롯해 미국 모토로라, 캐나다 노텔네트웍스 등 외국업체 3개사와 화위전기공사, 서안대당전신유한공사, 차이나모바일, 차이나유니컴 등 현지업체 4개사로 구성돼 있다.
관련 전문가들은 중국 현지업체와 주요 외국업체의 지지를 동시에 받고 있다는 점에서 TD-SCDMA가 표준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중국 현지의 주요 통신사업자들은 이 기술 규격을 받아들여 관련 장치 및 기기개발을 적극화하고 있다.
일본과 유럽이 밀고 있는 WCDMA도 TD-SCDMA와 함께 중국의 3G 이동통신의 표준규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중국의 통신사업자들이 이미 WCDMA와 연계성이 강한 유럽의 GSM에 엄청난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WCDMA를 그냥 버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의 2G 서비스에서 차지하는 GSM의 점유율은 압도적으로 높다.
이에 반해 미국의 퀄컴이 내세우는 cdma2000은 상대적으로 입지가 약한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올 들어 주룽지 총리를 포함해 중국 정부에서는 CDMA를 비롯해 cdma2000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이 이같은 태도에는 세계무역기구(WTO) 가맹과 대미무역을 위한 유화 조치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cdma2000의 장래를 희망적으로 보기는 힘들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중국이 일단 WTO 회원국이 되면 미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관련 업체들의 움직임에서도 cdma2000의 불안한 미래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지멘스의 경우는 중국의 3G 표준개발에 일찌감치 관여했기 때문에 TD-SCDMA 포럼의 창립 회원사가 되는 등 이 규격에 많이 기울어져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모토로라, 노텔같은 북미지역 업체들이 TD-SCDMA 포럼에 참가한 것은 cdma2000이 중국에서 3G표준으로 채택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사전 포석으로 받아들여진다. 퀄컴이 금년 로열티 협상에서 겪었던 일련의 과정은 중국이 cdma2000를 3G표준으로 채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한편 중국은 3G 서비스를 흑룡강·황하·양자강·저강 등 4대강 지역과 해안가의 도시에서 우선 제공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막대한 망 구축비와 비싼 통신료를 감안할 때 2003년에는 자금이 풍부한 도시만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국내시장이 매우 협소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싱텔은 3G에서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 오히려 이를 기회로 아시아 전역을 무대로 사업영역을 넓히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다. 홍콩·대만·말레이시아·중국·인도네시아·호주 등을 연결하는 「팬아시아 3G 네트워크」 구상이 그것으로 이미 홍콩 등지의 관련 업체와 협상에 들어갔다.
경제적 관점에서 싱텔의 계획은 대상 국가 가운데 일부에서라도 성공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싱텔의 팬아시아 3G 네트워크 구상은 싱가포르라는 좁은 시장을 놓고 여러 업체가 아귀다툼해야할 업체들에 사업범위를 국제적으로 확장시켜줘 새로운 매출원을 찾게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싱텔은 35억달러의 현금을 수중에 보유하고 있어 자금력에서는 팬아시아 3G 네트워크 구상을 충분히 진행시킬 수 있다.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인도네시아와 대만 등과 같은 국가들의 현지 사업자들은 3G 서비스 제공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자금력이 부족해 외국 업체와의 협력 없이 독자적으로 3G 서비스를 추진해 나가기는 힘든 상황이다.
싱텔은 이들 국가에 자금을 제공해 현지 사업자들과 3G사업에서 협력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이웃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중국 진출에 혈안이 돼 있는 유럽과 미국의 대형업체들이 간과하고 있는 시장이다. 즉 싱텔은 경쟁자가 비교적 적은 환경에서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싱텔의 야망은 국민 정서나 정치적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큰 문제는 싱텔이 정부와 관계를 맺고 국가의 기반시설을 장악하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바로 이 때문에 홍콩텔레컴과의 거래가 거부될 것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다. 또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국 등에서는 정치적 문제로 싱텔이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이 제한될 수도 있다.
또 싱텔이 팬아시아 3G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있어 전혀 경쟁업체가 없는 것도 아니다. 텔스트라-PCCW 연합도 싱텔과 유사한 계획을 발표했고, 허치슨-왐포 진영과 NTT도코모, 한국의 SK텔레콤 등도 해외로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 있다.
각국의 사업자 선정방식에 따라 싱텔의 계획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아시아 각국의 당국들은 현재 경매방식과 서류심사 방식을 놓고 고민중이다. 각국은 영국과 독일에서 실시했던 경매에 마음이 끌리고 있지만 지나친 경쟁으로 낙찰가가 자국의 사업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세는 서류심사 방식으로 기울고 있으며 이 방식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 이 둘의 혼합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서류심사 방식은 정치적 입김이 작용할 수도 있고 심사기준도 모호할 수 있다. 돈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는 방식이다. 따라서 막강한 자금력을 내세우는 싱텔에도 별로 유리하지 않은 선정방식인 것이다.
◇호주 =호주 텔스트라(Telstra)는 매우 현실적으로 3G사업에 접근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호주에서 3G 사업권을 받기 위해 한푼도 내지 않겠다고까지 발표했다. 또 3G 사업권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도 2G 주파수대역을 이용하는 3G사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호주 정부는 3G 사업권중 그 주인이 결정되지 않은 사업권에 대해 경매를 실시하여 내년초에 최소 15억달러의 수입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텔스트라의 발표는 3G에 대한 일반적 상식에 과감히 도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3G 사업권을 향후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간주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유럽의 사업자들이 지불한 엄청난 경매비용과 향후 수익을 비교한 결과 3G 사업권의 가치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3G 사업자들은 사업권 획득의 대가로 지불한 수십억 달러를 회수해야 할 뿐 아니라 네트워크를 개량하는 데도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됐다. 또 이 비용은 결국 3G 사용자들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돌아오게 된다.
일반패킷무선서비스(GPRS)와 EDGE(Enhanced Data Rate for GSM Evolution) 기술(2.5G 기술)을 이용할 경우 3G에 들어가는 비용의 일부로 2G 주파수 대역에서 속도가 최대 473Kbps인 3G 유형의 서비스가 가능하다. 따라서 3G 서비스에 지불해야 할 대가가 높을 경우 일반인들은 2.5G 서비스를 선호할 가능성도 있다.
사실 3G를 예측할 때, 가장 예상하기 힘든 변수가 바로 소비자다. 소비자가 어떤 종류의 서비스를 원할지 또 소비자가 서비스에 대한 사용료를 기꺼이 지불할지의 여부로 3G 사업권의 진정한 가치가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보가 없으면 사업권의 가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경매는 모험이 될 것이다.
텔스트라의 이번 경매 불참 발표는 3G 사업권 비용을 높이려는 다른 사업자의 입찰전략을 혼란시키려는 전술로도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텔스트라가 3G 사업권을 포기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텔스트라의 이번 발표가 전세계 3G 경매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