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이드 게임에 대한 심의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발단은 국회의 국정 감사장에서 비롯됐다. 민주당 정범구 위원이 칼을 빼들었다. 지난 10월 24일 문화관광부 국정 감사장에서 정 위원은 『아케이드 게임을 법정 심의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며 사전 심의로 인해 국내 업체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아케이드 게임 심의의 무용론을 제기했다. 정 의원의 이같은 지적은 아케이드 게임의 심의기관인 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 김수용)와 문화부는 물론 아케이드업계에 일파만파를 던졌다. 특히 그동안 사행성이라는 오명에 짓눌렸던 아케이드 게임 업계가 제 목소리를 내도록 부추겼다. 시민단체도 이 기회에 사행성 게임에 속수무책인 사후관리제도를 제대로 고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급해진 문화부와 영등위는 시민단체와 관련업체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오는 9일 「아케이드 게임 심의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아케이드 게임 심의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발전적인 대안을 찾아보는 긴급 진단 시리즈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지난 6일 산업자원부 국정 감사장에서 한나라당 신현태 의원(수원 권선구)은 최근 강원도 정선에서 문을 연 「카지노 호텔」 문제를 들고 나왔다. 신 의원은 『강원랜드가 운영하는 카지노에 설치된 480대의 사행성 게임기 중 470대가 외산이고 국산은 고작 6%에 그쳤다』며 『게임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원 육성하겠다는 정부정책은 어디로 사라졌느냐』고 반문했다. 게임 강국을 외치는 우리나라가 슬롯머신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는 질책인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 질책은 옳다. 신촌, 영등포, 종로3가 등지의 유흥가는 물론 동네 골목에서 「카지노 도박장」 표시를 내붙인 컴퓨터 게임장들이 성업할 정도로 사행성 게임의 천국이 돼 버렸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카지노와 같은 사행성 게임기를 만들지 못하도록 돼 있다.
물론 해외수출을 하기 위해 개발생산하는 경우는 예외지만 국내에 유통시키려면 「음반비디오게임물에관한법률」에 근거해 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 김수용, 이하 영등위)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영등위의 등급판정을 받지 못한 게임기는 국내에서 제작·유통·설치·운영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자칫하면 사행성을 조장하고 음란·폭력성을 유발할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에 대해 등급심의를 하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 정서상 납득할 수 있다. 영등위의 등급심의가 영화나 비디오는 물론 PC 게임이나 가정용 게임 등 다른 게임의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도 이뤄지고 있으며 일정한 순 기능을 하고 있음에도 유독 아케이드 게임의 심의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나름의 복잡한 사정 때문이다.
문제는 1998년 8월 27일 게임물에 대한 심의업무가 보건복지부에서 문화관광부로 이관하면서 시작한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아케이드 게임물에 대한 심의 및 사후관리를 컴퓨터 게임장(오락실)의 단체에 맡겼다. 아케이드 게임기의 실질적인 소비자인 오락실 업주의 단체가 게임기의 내용을 심의함에 따라 일반인의 상식수준을 벗어난 「문제있는 게임기」들이 버젓이 심의 필증을 받고 청소년 앞에 놓이게 됐다. 법적으로 금지된 도박을 실제로 할 수 있는 슬롯머신형 게임기를 비
롯한 사행성 게임기들이 대량으로 양산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게임기의 심의권을 넘겨받은 문화부는 청소년 보호와 건전한 게임문화 정착을 내걸고 엄격한 심의기준을 마련했다. 특히 사행성 게임기에 대해서는 소프트웨어적인 방법으로 릴이나 슬롯머신을 구현하는 게임기조차 18세 이용가(성인용) 등급을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엄격한 심의기준을 적용해 사행성 게임기 등을 원천봉쇄하려는 문화부의 생각은 곧바로 차질을 빚는다. 당장 과거 보건복지부의 심의 기준을 통과한 게임기들이 문제가 됐다. 1998년 상반기 이전에 심의를 받은 게임기의 대부분이 영등위(공진협)의 강화된 심의기준에 따르면 등급보류로 폐기돼야 하지만 행정판단의 불일치에 따른 집단민원의 소지가 높았다. 문화부는 이같은 사행성 게임기들이 전체 125종 33만8000대에 이르며 재산가치로도 5000억원에 상당해 이를 당장 폐기토록 하는 데 무리가 있다고 판단, 2001년 5월 8일 등급분류를 다시 한다는 조건으로 사용을 허락했다. 이에 따라 현행 영등위의 심의기준으로는 불법일 수밖에 없는 게임기들이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어 사행성을 조장함은 물론 게임기 산업 자체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문화부가 과거 복지부 시절의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엄격한 심
의기준을 들이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사행성을 막는 데 급급해 현실성 없는 기준을 고집하다 보니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게임기 산업 자체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엄격한 심의기준에 따른 등급분류가 제대로 지켜지는지를 관리 감독할 사후관리가 엉망인 것도 큰 문제다. 특히 아케이드 게임기의 경우 기판의 위변조가 쉬움에도 불구하고 이를 철저히 관리감독할 체계나 조직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불법탈법에 속수무책인 것이 현실이다.
사행성이나 폭력성 등에 있어 서로 상반된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아케이드 업계나 시민단체 모두 현재의 영등위 심의와 사후관리는 부분적인 개선으로 치유될 수 없는 중병을 앓고 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물론 처음에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겨났지만 현재 영등위의 아케이드 심의는 사행성을 막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게임산업의 발전을 가로 막는 등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창희기자 chang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