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의 악학궤변>이것이 진정 하드코어!-림프 비즈킷의 새 앨범

림프 비즈킷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서태지에게 고맙다고 해야할 것 같다. 물론 콘과 함께 일진급 밴드인 그들이 서태지가 일으킨 하드코어의 광폭풍이 있기 전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의 하드코어 붐을 타지 않았다면 아무리 제대로 만들어진 핌프 록 앨범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쾌속질주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교실이데아」에서 거친 그롤링 보이스를 보여주었던 안흥찬이 그의 밴드 크래쉬와 함께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도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초콜릿 스타피시 앤드 더 핫 도그 플레이버드 워터」라는 림프 비즈킷의 새 앨범은 「이것이 바로 핌프 록」이라고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핌프의 사전적 의미는 「포주」인데 보통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백인 하층민을 지칭한다. 따라서 핌프 록은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백인 양아치들의 강렬한 록 음악」이다. 이는 미국 슬럼가의 흑인들이 울분과 분노를 랩이라는 음악 장르로 승화시킨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하드코어에 대해 설명해본다면 이는 장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이고 노골적인 것」이라는 뜻의, 일종의 수식어다. 따라서 핌프 록이나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랩 메탈, 마릴린 맨슨의 인더스트리얼 록 음악 등은 극단적이고 노골적인 공통

분모에 의해 하드코어 음악으로 한데 묶인다.

림프 비즈킷의 리더인 프레디 더스트는 문신을 새겨주는 사람이었는데, 콘의 베이시스트 필디의 몸에 문신을 새겨준 것이 인연이 돼 데뷔했다. 첫 앨범에서는 직선적인 사운드를 들려줬지만 지난해에 내놓은 「시그니피컨트 오더」에서는 힙합적 방법론을 대폭 수용해 놀라움을 던져줬다. 그리고 이번에는 첫 앨범의 직선적 성향과 지난 앨범의 그루비감을 절묘하게 뒤섞은 사운드로 선진적인 핌프 록 밴드로서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즉 림프 비즈킷은 매 앨범마다 새로운 것을 보여줬고 특히 이번 앨범에 와서 비로소 그들의 사운드가 완전히 정립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프레디 더스트는 이번 앨범에서 어김없이 고성의 욕설을 쉴 새 없이 내뱉고 노래와 랩의 경계에 서 있는 독특한 보컬을 들려준다. 또 나머지 멤버들도 헤비 리프와 샘플링, 스크래치, 그리고 그루비한 리듬 섹션으로 그들만의 아이덴티티를 살리고 있다. 현재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 데뷔해 2주째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림프 비즈킷은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는 최고의 핌프 록 밴드다. 하지만 하드코어는 그 특성상 이전보다 자극적이고 강렬하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따라서 림프 비즈킷은 이번 앨범의 예견된 성공 너머 모르긴 몰라도 다음 앨범 작업에서 아마 속깨나 썩을 것이다. 하드코어라는 것이 매우 효과적인 방법론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