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 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정보는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만들어지고 어떻게 유통되는가. 또한 최고경영진의 업무수행에 필요한 정보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실제로 미국의 한 대형 방위산업체가 여기에 답하기 위해 사내에 보관돼 있던 엄청난 양의 자료에 대한 규명과 확인 작업을 벌였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발견됐다. 모두 14개의 관리계층 가운데 최소한 6개 계층 이상이 정보의 창출 및 유통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보관된 자료는 정보 창출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관리를 위해서만 사용되고 있었다는 얘기다.
수십년 내에 기업의 관리계층은 지금의 절반 정도로, 관리자는 3분의 1로 줄어든
다고 한다. 대신 그 틈이 전문지식이나 기량을 갖춘 전문가들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변화는 기업의 조직구조가 궁극적으로는 1950년대 제조업체의 전형에서 벗어나 병원이나 대학 등과 유사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좋은 예가 대형 종합병원이다. 대형병원이라면 적어도 수백명의 의사가 수십개의 전문분야에 배치돼 있다. 각 전문분야에는 각각의 전문지식, 훈련방법, 그리고 전문 언어가 있으며 최고의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책임자가 될 것이다.
이때 각 책임자는 아래로는 고객(환자), 위로는 최고경영진과 직접적으로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사이에 중간 관리층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예는 수백명의 단원이 소속된 교향악단의 경우를 살펴보면 훨씬 더 명확해진다.
기존 조직이론대로라면 교향악단은 연주회 때마다 수십명의 부서책임자(부장)와 몇명의 부문지휘자(임원)가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교향악단은 이처럼 피라미드식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단 한명의 지휘자(최고경영자)만이 필요할 뿐이다. 각 단원들은 전문가들로서 각자의 전문성을 담보로 하여 오로지 지휘자 한사람의 지휘만 받으면 되는 것이다.
미래의 기업이 병원 또는 교향악단과 같은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두개의 조건이 필요하게 된다. 그 하나는 구성원 개개인이 해당분야에서 자기역할에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큼의 높은 지식과 기량을 갖고 있어야 하며 또 하나는 최고경영자가 이들에게 업무처리 방식에 대해 언급하거나 지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교향악단의 지휘자는 클라리넷 주자에게 클라리넷 연주기법을 가르치거나 지시할 수는 없다. 다만 지휘자는 연주자의 기량이 전체 연주의 틀에 맞도록 유도할 뿐인 것이다.
의사·교수·교향악단원 등과 같은 전문가들을 처음으로 지식근로자(knowledge worker)라 명명한 이가 바로 피터 드러커다. 현대 경영학의 대부라 일컬어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지식근로자의 지식이 앞으로의 사회나 경제를 결정짓는 지배적인 자원이 된다고 강조했다. 더 이상 자본이나 토지 또는 노동이 절대적인 생산요소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본이나 토지 또는 노동이 절대적인 생산요소가 되면 기업들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병원·대학·교향악단과 같은 형태의 지식기반 조직으로의 변모가 불가피해진다.
피터 드러커는 이런 새로운 사회를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Post Capitalist Society)」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회적 관심의 초점, 즉 지식이 생산수단이 되면서 나타난 사회 구조의 변화와 경제적 역동성 그리고 사회문제들이 지난 250년 간 자본주의사회를 지배해왔던 그것들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보는 것다. 그는 그러나 이 사회가 시장경제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반(反)자본주의사회도, 은행과 같은 자본주의적인 기관들이 그대로 존치된다는 점에서 비(非)자본주의사회도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스무고개의 해답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피터 드러커는 이러한 사회를 통틀어 지식사회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지식사회의 도래를 이미 40여년전부터 예고해왔다.
<논설위원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