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관리로 정평이 나 있는 미국의 말콤볼드리지위원회는 2년 전 글로벌 기업 CEO 300명에게 「앞으로 기업이 당면할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조사했다. 그 대답으로 94%를 차지한 「세계화」에 이어 「지식경영」이 88%를 차지했다. 글로벌 기업 경영인들에게 지식경영이 최대의 관심사 중 하나로 떠오른 것이다.
이처럼 지식경영에 관심이 높아도 이를 실제로 기업경영에 접목시키기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지식경영은 매일 구호를 외쳐서 될 일도 아니고 e메일의 횟수를 늘려서 될 일도 아니다. 도움이 될 정보를 감지, 가공하고 확산해서 더 탄탄한 지식기반을 쌓고 그 바탕에서 일을 해 생산성을 높여가야 한다.
「개미」라는 소설책을 보면 개미들은 냄새로 의사를 전달한다고 한다. 어느 순간에 모두가 모여 냄새를 발산하면 서로가 상대방의 생각과 경험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개미처럼 기막히게 쉬운 방법으로 단번에 지식을 공유하지 못한다.
우리가 지식을 나눌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대화다. 하지만 대화를 통한 지식공유는 곧 다시 기억 속에 숨어버린다. 지식경영은 머리 속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지식을 문서화하여 가시적인 형태의 지식으로 바꾸어 공유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렇게 문서화된 지식은 쉽게 변질되지 않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된다.
일본의 노나카 교수는 지식이 전이되는 과정을 체계화하여 지식창조의 4단계 이론을 정립했다. 첫단계는 경험이나 지식이 대화나 접촉을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서 지식이 암묵지 형태에서 암묵지 형태로 전해진다. 둘째는 이렇게 전달된 지식을 다른 사람도 알 수 있게 문서로 만드는 단계며 암묵지 형태의 지식이 형식지로 전환된다. 셋째는 이러한 문서를 통해 많은 사람이 보고 토의하여 새로운 전략이나 프로그램을 도출해 정리하는 단계로 지식은 형식지에서 창의적으로 가공된 형식지로 발전한다.
네번째는 이렇게 만들어진 전략이나 계획이 발표될 때 많은 사람의 머리 속에 기억되는 단계며 지식은 형식지에서 다시 암묵지로 전환된다. 결국 모든 지식은 이 4단계를 계속 순환하며 더 나은 형태의 지식으로 발전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네가지의 지식경영 단계는 어느 하나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첫번째 단계에서는 특히 휴먼터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기업에는 건물 내에 휴게실같은 공간을 마련, 직원들 간에 대화를 통한 지식공유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육심리학적으로는 같은 부서나 직급끼리 이야기하는 것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대화할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더 쉽게 얻어진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흡연실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은 지식경영 현장이 될 수 있다.
미국 시장 공략에 성공한 닛산이 80년대 초 유럽 공략을 계획할 때의 일이다. 닛산은 유럽 자동차 시장 공격에 앞서 우선 디자인팀을 유럽에 보냈다. 미국에서의 성공 기세를 몰아 즉각 진격하지 않고 먼저 유럽의 환경을 이해하고자 했던 것이다. 수십명의 디자인 팀과 엔지니어들을 2∼3개월 유럽에 보내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질주하게 한다. 그리고 그 질주 쾌감을 바탕으로 신차를 설계하도록 했다. 이들의 체험이 반영된 신차 「프리멜라」는 출시되자마자 유럽시장에서 크게 히트했다. 고속 질주의 쾌감을 즐기는 유럽 고객들이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인 것이다. 닛산의 경우처럼 경험한 지식을 통해 시장을 확실히 알고 그에 걸맞은 제품을 개발해 공략할 때 그 사업이 성공할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우리는 지식경영을 얘기할 때 흔히 거창한 지식경영 시스템을 먼저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지식경영의 출발은 휴먼터치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조직 내에 신뢰와 상호이해의 수준을 높이는 친밀감과 의사소통 수단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서로 믿는 사람들간에 대화할 때 수없이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그 많은 정보 중에 추려담을 만한 것을 고르는 안목과 그것을 남이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정확히 기록하고 쉽게 표현하는 의사소통 능력이 있을 때 양질의 지식이 가공되고 확산된다. 컴퓨터 시스템의 도입은 그 다음의 문제다.
디지털 시대의 지식경영도 휴먼터치에 달려있다. 지식경영도 결국 사람과 사람사이의 벽 허물기의 문제다.
<김형회 바이텍씨스템 회장 hhkim@bite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