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도메인의 편법 선점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 등 동남아 3국이 발칵 뒤집혔다. 베리사인GRS가 도메인관리기구(레지스트리)로 있는 최상위 도메인의 경우 한글뿐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 등 3개국어에 대한 자국어도메인을 지난 10일부터 등록받기 시작했는데 편법 선점이 한글도메인뿐 아니라 아니라 중국어 도메인과 일본어 도메인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자국어도메인 편법선점 사건은 때문에 동남아 3개국과 베리사인GRS간 국제적인 문제로 불거지고 있다.
더욱이 베리사인GRS는 사실을 인지했든 못했든 이렇게 사전등록된 영문도메인을 소유권자가 삭제요청을 한 후 정상적인 자국어도메인으로 다시 등록시켜준 의혹까지 받고 있다.
최상위 도메인 관리기구로서 세계 도메인시장을 지배해온 베리사인GRS는 실수였든 아니든 이번 사건으로 전세계 네티즌과 업체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했으며 국제도메인관리기구(ICANN)로부터도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될 처지에 놓였다.
현지시각으로 지난 13일부터 미 LA에서 열리고 있는 ICANN 회의에서 각국 위원들이 문제를 공식 제기할 예정이어서 어떻게 사태가 수습될지에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선점 현황=편법 선점된 자국어도메인은 한글도메인에서만 상당수에 이른다고 관련업계는 집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치가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유명 브랜드나 일반명사들이 대부분이다. 한글의 경우 대한민국, 한글, 정몽준, 쇼핑몰 등 일반명사나 고유명사를 비롯, 엘지텔레콤, 제일모직, 조선일보, 후이즈, 아사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중국어에서도 중국, 중국망 등이, 일본어에서도 일본, 서비스 등과 같은 도메인이 선점당했다. 표참조
◇원인과 책임=이번 사태의 원인과 책임은 명백하다. 최상위 도메인 관리기구인 베리사인GRS가 각국의 언어를 지원하기 위해 채용한 언어식별코드(BQ--)가 외부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 식별코드를 알아낸 사람들이 자국어도메인 등록개시 이전에 아예 영문으로 해당도메인을 등록해버렸기 때문이다.
문제의 원인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베리사인GRS는 그 책임을 면할 길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자국어 도메인 편법선점은 한국인뿐 아니라 일본인, 중국인들에 의해 모두 발생했기 때문이다.
베리사인GRS는 시험운영을 하면서 변환키를 공개했기 때문에 이같은 사태를 고려해 정식 등록때부터는 변환키를 바꾸겠다고 밝혔다고 전문가들은 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환키를 바꾸지 않은 것은 베리사인측의 직무태만이나 방기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편법등록된 자국어도메인이 소유자들이 원할 경우 도메인을 삭제해줘야 하는 의무 때문에 버젓이 정상적인 도메인으로 둔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정이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베리사인GRS는 아직까지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는 물론 사과의 말 한마디 않고 있다. 관계자들은 고의든 아니든 해당국가에 커다란 사회적 혼란을 일으켜 놓고도 베리사인이 이처럼 무책임할 수 있는지에 분노하고 있다.
◇수습책과 전망=이번 사태는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관계자들은 베리사인이 △우선 선등록된 도메인의 권한을 일시 정지하고 △선등록 도메인을 무효화한 후 △선등록된 도메인에 한해 다시 등록을 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리사인측의 공식적인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정황을 고려할 때 귀책사유가 선등록자에게 있는 게 아니라 베리사인측에 있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선등록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이같은 수습책이 과연 합법적이냐 하는 문제가 의문으로 남는다. 선등록자들은 도덕적 비난을 받을지언정 선등록된 도메인을 자국어가 아닌 영문도메인으로 계속 사용하겠다고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베리사인측은 이에 대해 아무런 입장표명이 없는 상태다. 이번 문제는 베리사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도메인관리체계의 문제인 만큼 ICANN측에서도 사태해결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베리사인과 ICANN이 이번 사태를 원만하게 수습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설혹 사태가 어떤식으로든 수습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발생한 사회적 혼란과 다시 있을 재등록시의 혼란은 어쩔 수 없는 실정이다.
이번 사태는 자국어도메인이라는 엄청난 시장에 눈이 멀어 면밀한 대비책 없이 상업화에만 연연한 국제도메인관리기구들의 허점과 난맥상을 노출해 국제도메인관리체계의 권위를 땅에 떨어지게 만든 세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