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대계 다시짜자> 5. 에필로그

「초고속인터넷가입자 300만 돌파」 「초고속디지털가입자회선(VDSL) 시범서비스 실시」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온라인 최대 구매국」 「무선인터넷 가입자 660만명 돌파」.

밀레니엄 첫해를 마감하고 있는 한국의 화려한 통신산업 지표다.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보기 힘든 국내 초고속 인터넷 환경은 정부의 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국민의 정부는 IMF 초기 경제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는 방안으로 「사이버코리아 21」이라는 큰 그림을 발표했다. 사이버코리아 21은 산업사회에서 지식기반경제로 이행하기 위해 마련된 정책으로 국내 정보통신망의 고속화·고도화 등을 우선 추진과제로 설정했다.

결국 정보인프라를 조기 구축하고 고속·고도화된 정보통신망과 정보기술을 활용함으로써 정부, 기업, 개인 등 모든 경제 주체의 생산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고 기존산업을 지식기반산업으로 발전시킬 것이라는 정부의 판단이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사이버코리아 21은 정부의 정책중 가장 잘한 정책중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이룩하지 못한 화려한 외향과 달리 한축으로 함께 성장해야 할 국내 인터넷 장비산업은 심한 속병을 앓았다. 정부의 방침과 서비스사업자들의 경쟁논리가 맞물리면서 선진 다국적기업들의 공세로 국내 장비업체들의 입지는 더욱 더 좁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기회는 남아있다. 기회요인은 우선 국내 인터넷환경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는 데 있다. 물론 이것은 국내 업체에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최근까지도 국내 통신환경은 선진국에서 도입한 것을 검토한 뒤에 적용해 왔다. 그러다 보니 국내 장비업체들은 항상 거대 다국적 통신장비업체에 한발 뒤처져 제품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핸디캡은 수입제한이나 통신사업자와 공동개발후 우선 조달하는 「개발조달」 형식으로 극복해 왔다.

결국 안방에 머물 수밖에 없는 산업구조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환경이 변했다. 이제 국내 통신시장은 미국과 어깨를 견줄 만큼 세계 최고의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ADSL시장의 경우 올해 전세계 공급물량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선진 통신 인프라의 조기구축에 따라 국내시장에서 선전한다면 해외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업체 한 관계자는 『초고속 인터넷 장비분야에서는 국내 인프라 조기 구축에 따라 국내 장비업체들의 수준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며 『이는 그만큼 수출가능성도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제 국내 인터넷 장비산업의 사활은 산업주체들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있다. 우선 대기업들은 인터넷 장비사업에 대한 명확한 미래 청사진을 밝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와 같은 불명확한 비전과 사업의지로는 더 이상 인터넷 장비사업의 미래는 존재하기 어렵다.

벤처기업들도 이제 핵분열을 잠시 중단하고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세계 최초」 「최소한 국내 최초」의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모험과 열정을 다시 한번 발휘해야 한다. 벤처기업과 대기업의 적극적인 협력도 요구된다. 벤처기업과 협력사업을 활발히 추진중인 한 대기업 임원은 『그동안 대기업과 벤처기업은 인력 빼내가기 등의 문제로 소원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서로의 신뢰하에 벤처기업의 기술력과 대기업의 마케팅, 자금력이 합쳐진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대 수요처인 통신사업자들의 국내 장비업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빠질 수 없다. 사실 국내에 공급되는 ADSL장비의 공급가격은 전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국내 장비업체들이 ADSL장비를 조기에 국산화한 것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결과다. 정부도 인프라 구축 및 서비스 산업 육성 우선정책에서 탈피, 장비 산업 육성에도 좀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또 인력난을 겪고 있는 이 분야의 인력 육성을 위해 장기적인 대책도 마련되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통신 서비스 선진국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거대 시장으로 부상중인 인터넷 장비산업 우등생으로 발전할 것인가.』 이제 그 기로에 서있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