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에 설립된 신생 벤처기업 A사의 B사장. 그는 요즘 매출실적 높이기에 정신이 없다. 사업 첫해인 올해 3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내년 6월까지 반기실적을 60억∼70억원대로만 끌어올린다면 하반기에 코스닥진출의 수순을 밟기가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B사장의 머릿속에는 하루라도 빨리 코스닥에 등록해 수백억원대의 거금을 확보하겠다는 꿈으로 꽉 차있다.
목표가 이처럼 단순하다보니 B사장에게 있어 과정은 별로 상관이 없다. 어떻게든 매출을 올려서 단기간에 코스닥에 입성하면 그만이다. 그러다보니 매출에 도움이 된다면 본래의 비즈니스와는 전혀 관계없는 외주생산과 수입판매 등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연히 매출에 도움이 안되는 기술개발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코스닥시장이 단기간에 활성화되고 벤처기업의 코스닥등록요건이 대폭 완화되면서 B사장처럼 경쟁력 있는 기술개발과 설비투자, 마케팅 등의 성장과정을 무시한 채 코스닥입성이라는 결과에만 너무 집착,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벤처기업인들이 적지 않다. 어떡하면 좋은 제품을 만들어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 내다 팔 것인가보다는 회사내용을 잘 포장해 투자가들을 유혹, 코스닥에만 가면 벤처스타가 되는 세상이 돼버린 것이다.
비단 벤처기업가들뿐만 아니라 벤처투자가들도 결과에만 집착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창투사 등 벤처캐피털업체들의 경우 부족한 것이 많은 벤처기업을 지원, 대외경쟁력과 기업가치를 높이는 과정에는 소홀하다. 어떻게 하면 실제보다 부풀려서 코스닥 공모가와 주가를 높여 수익률을 높일 것인지에만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자연히 겉으로는 3∼5년을 내다보고 장기적으로 투자한다고 떠들어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2∼3년 후에나 코스닥진출이 가능한 신생벤처보다는 코스닥등록이 임박한 벤처가 중점 투자대상이다. 위험이 적고 결과가 빠르기 때문이다. 벤처기업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벤처캐피털마저 이런 지경인데 은행·증권·보험·투신 등 기관투자가나 일반법인, 개인투자가 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정은 정부도 마찬가지다. 벤처가 IMF 경제위기 극복의 견인차이자 미래 한국경제의 희망이라고 치켜세우고 지원을 늘리고 있지만 실상은 결과나 실적주의에 젖어있다. 때문에 실적이 나타나기까지 오랜시간이 걸리는 인프라보다는 자금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2002년까지 2만개 벤처를 만든다는 데만 혈안이 돼 국제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진정한 벤처를 양성하기 위한 과정에는 정부의 관심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벤처인들이 과정에 충실해야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국제경쟁력을 갖춘 건실한 벤처를 많이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되새겨야 한다. 정부역시 벤처기업확인제도를 통해 2만개 벤처를 육성하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단 100개 벤처를 만들더라도 실리콘밸리처럼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당당한 한국벤처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왜곡된 벤처스타의 잣대를 바꾸는 작업이 먼저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이제는 회사 내용에 상관없이 코스닥에 등록, 공모자금과 시세차익으로 거금을 확보한 벼락부자들보다는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기술개발을 통해 착실하게 성장, 세계무대에서도 당당히 이름을 날리고 있는 진정한 벤처기업인을 「벤처스타」로 키울 수 있는 사회적인 풍토조성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