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용주의 영화읽기>제이 로치 감독의 「오스틴 파워 제로」

국내 극장에서 「오스틴 파워」로 개봉됐던 오스틴 파워 2편의 전편.

2편의 흥행에 힘입어 뒤늦게 국내에 개봉되는 바람에 수입사에서는 「오스틴 파워 제로」라는 제목을 붙였다. 「세계적인 신비의 사나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오스틴 파워 제로」는 각본과 1인 2역을 맡아 연기한 마이크 마이어스가 창조해낸 오스틴과 닥터 이블의 캐릭터를 즐기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천박한 화장실 코미디의 결정판이라는 평가처럼 「오스틴 파워」는 저질스런 농담과 노골적인 섹슈얼리티, 거북한 남성주의의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찬 영화다. 하지만 그 무례함 속에 감춰진 파격적인 기발함이 이 영화에 대한 일부 지지자들의 열렬한 옹호를 얻어내는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오스틴 파워 제로」는 「오스틴 파워」와 거의 흡사한 텍스트로 전개되지만 2편에서 놓쳐버릴 수 있는 풍자와 은유의 키워드를 제공하는 구실을 한다. 007을 비롯한 수많은 스파이영화의 패러디를 통해 던져지는 잔재미도 웃음을 이끌어내는 데 톡톡히 한몫을 하지만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에서 캐릭터가 지니는 막강한 위력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촌스런 외모에 레이스가 달린 원색적인 의상, 이빨이 드러나도록 웃는 웃음, 뻔뻔하며 노골적이지만 뛰어난 능력을 지닌 첩보원 오스틴. 그는 모든 여성이 사랑하는 인물이다. 첩보원이라는 신분이 믿기어려울 정도로 그가 지나다니는 길목에는 그를 추종하는 여자들이 떼를 지어 몰려온다. 오스틴의 숙적은 멍청하지만 귀여운 닥터 이블. 전 세계를 정복하려는 그의 황당한 야망은 늘 오스틴과 대결을 벌인다. 영화는 1967년 오스틴과 대결을 벌이던 닥터 이블이 냉동인간이 되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1997년의 시대상황을 절묘하게 버무리면서 극단적인 과장을 통해 방정맞고 때로는 실없는 폭소를 자아낸다. 냉동인간이 되어 1997년에 깨어난 오스틴과 이블은 서로가 혼란에 빠진다. 모든 여인들이 자신의 성적 매력에 사로잡힌다고 생각했던 오스틴의 새 파트너 바네사는 그녀의 어머니와 달리 『지구상에 단 둘이 남게 되어도 절대 섹스를 하지 않겠다』며 오스틴을 피하고, 이블은 난데없이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반항적인 아들로 인해 부모의 모임에도 참석하지만 신통치 않은 반응뿐이다.

마이크 마이어스의 코미디는 황당하고 엉뚱하지만 문화적인 이질감과 때늦은 시대상이 빚어내는 냉소적인 썰렁함 속에서도 여전히 즐겁다. 60년대를 풍미한 자유와 본능에 대한 섬세한 촉수와 키치적인 배경은 대중문화가 지니는 쾌감을 배설해내는 충족감을 준다.

<영화평론가·엔필름 컨텐츠 팀장 uju@nFil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