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액슬로드 저 「위대한 CEO 엘리자베스 1세」
필자는 이 난을 통해 에이브러험 제일즈닉의 「관리자와 리더의 차이」에 대해서 쓴 적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관리자형과 리더형으로 나눠지는데 이 두 부류는 서로 물과 기름의 관계라서 한사람에게서 두 유형이 동시에 나타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글을 통해 필자는 관리자문화와 리더문화가 적절하게 보완관계가 될 때 조직이 발전한다는 메시지를 적어 보냈다.(제일즈닉의 원전에도 그렇게 결론을 맺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독자들의 반응은 너무나 의외의 것이었다. 이들의 관심은 대체적으로 관리자와 리더가 조화함으로써 조직이 어떻게 발전해나갈 수 있는가가 아니라, 자신이 관리자형과 리더형 가운데 어떤 부류의 사람인가에 모아져 있었다. 심지어 어떤 독자는 『리더가 되기 위한 전단계로서 이제까지 관리자 수업에 충실했는데, 두 성격이 공존될 수 없는 것이라면 리더가 되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가』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이런 반응을 보면서 필자는 새삼 최근 출판가에서 동서고금 영웅들의 이야기나 리더십에 관한 책들이 잘 팔리는 이유를 깨닫게 됐다. 바로 이런 시점에서 필자의 눈에 띈 리더십에 관한 색다른 책 한권이 바로 「위대한 CEO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Ⅰ CEO)」였다. 여기서 엘리자베스 1세는 어떤 사람이 리더인가, 또 리더의 자질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가르고 있다.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도 엘리자베스 1세를 오늘날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의미하는 CEO로 표현한 것이 흥미롭다. 저자는 그가 부도 직전의 영국(엄밀하게는 잉글랜드)을 구해내고 마침내 「영국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이같은 표현을 사용키로 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했던 1558년을 전후해서, 영국은 로마가톨릭과 결별하는 과정에서 그 영향권에 있는 프랑스·에스파냐·스코틀랜드 등과 끊임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 문제는 안에서도 왕과 의회를 끊임없이 대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뿐만 아니라 왕위계승을 놓고 권력끼리의 음모가 뒤섞이면서 영국은 그야말로 한치앞을 못내다보는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 난세에서 엘리자베스 1세는 안팎으로 강온 전략을 적절하게 구사함으로써 위기에서 영국 부흥의 기틀을 마련한다. 우선 독재군주 펠리페 2세가 이끌던 에스파냐의 당대 유럽최고 명성을 자랑하던 무적함대를 쳐부셔 굴종시켰다. 가톨릭국가들과의 구원(舊怨)은 프랑스와 스코틀랜드 혈통의 제임스 1세를 왕위계승권자로 지목하는 정치적 수완을 발휘함으로써 풀어냈다. 그러나 안으로는 로마가톨릭과 완전결별을 꾀함으로써 종교개혁의 일관성을 유지했으며 그 결과 그는 정치와 종교 모두에서 영국 최고의 통치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영국 역사상 최고의 CEO로서 엘리자베스 1세의 이같은 리더십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역사를 반추할 수는 없겠지만 엘리자베스 1세가 만약 아버지인 헨리 8세처럼 강
력한 절대군주였다면 필경 의회와 정면 충돌하여 주저 앉았을 터이고 그렇게 됐다면 마침내 영국도 무너졌을 것이다. 이복 언니인 메리 1세처럼 보수적이었다면(그는 신교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여 「피의 메리」라는 악명을 얻었다) 신교파의 저항에 밀려났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는 펠리페 2세처럼 독선적이고 야심에 찬 군주도 아니었다. 같은 시대 프랑스의 앙리 4세처럼 국력의 구심점을 찾지 못하는 무능력한 군주는 더더욱 아니었다. 만약 엘리자베스가 펠리페 2세나 앙리 4세 중 하나의 인물이었다면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영국은 유럽 대륙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역사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는 엘리자베스 1세의 리더십이 「꿈을 만들어내고 확산시키며 실현하는 삶」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그래서 그의 삶은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고 경력을 쌓고 기업을 성장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꿈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논설위원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