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바이러스 불감증

『설마 불이 날까 하는 생각에 비상구 근처를 술창고로 사용해 왔습니다.』

『개인용 PC에 백신이 설치돼 있어 게이트웨이 백신을 따로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첫번째는 꽃다운 10대 청소년 57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천 인현동 라이브 카페 주인이 사고 후 비상구를 왜 개방하지 않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말이고, 두 번째는 나비다드 바이러스 감염으로 사내 업무가 마비 상태를 보인 모 업체 네트워크 관리자의 고백이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가스 폭발이나 대형사고는 어처구니없는 실수 때문에 일어나는 인재(人災)가 대부분이다. 지난 4월 CIH 바이러스와 5월 러브 바이러스에 이어 다시 나라 전체를 바이러스 공포에 떨게 한 나비다드 바이러스의 피해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인재에 다름아니다.

요즘 백신업체들은 신종 바이러스가 등장하면 아무리 늦어도 반나절이면 그 바이러스를 검색하고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을 만들어낸다. 더욱이 기업 사용자에게는 친절하게 바이러스 발견과 백신 업데이트에 대해 전자우편으로 알려준다.

이번 나비다드 바이러스에 피해를 입은 기업이나 기관의 공통점은 게이트웨이 서버에 백신을 설치하지 않거나 설치했더라도 이를 실행시켜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모 업체 네트워크 관리자도 게이트웨이 백신을 실행시키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또 그 관리자는 백신을 실행시키지 않은 이유에 대해 『모든 전자우편을 백신으로 검사하면 전자우편이 늦게 전달돼 직원들이 불만을 제기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게이트웨이 서버 차원에서 전자우편의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하더라도 전자우편 전달이 지연되는 시간은 10여분 정도에 불과하다. 결국 눈앞의 작은 편리함 때문에 다가올 대형사고를 막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날로 진화한다. 이를 막는 백신업체의 노력도 필사적이다. 하지만 바이러스 제작자가 노리는 것은 백신의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사용자의 안전불감증이다. 이 안전불감증을 치료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나비다드 바이러스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건질 수 있는 유일한 교훈이다.

<컴퓨터산업부·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