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벤처, 새틀을 짜자>(4)우물안을 벗어나자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실리콘밸리에 진출했으나 세계시장의 벽은 너무도 높았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첨단기술이라고 자부해서 세계무대에서도 통하리라 믿고 나갔으나 실리콘밸리에서는 겨우 범용기술에 불과했습니다.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도중하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A사 부사장)

『처음부터 아예 내수시장은 고려하지 않고 세계시장을 타깃으로 설정했습니다. 인력채용도 영어구사능력 등 해외적응력을 감안했으며, 해외 첨단기술 정보를 수집하는 데 중점을 두고 미국을 수없이 드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고생도 심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자신감을 얻었습니다.』(디엔씨테크 박한서 사장)

정보통신분야에서 유망벤처로 꼽히는 두 회사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나름대로 기술력과 사업성을 인정받는 두 회사지만 현재 상황은 너무도 다르다. 지난 7월부터 펀딩을 추진해온 A사는 자금경색으로 4개월째 허송세월만 보내다 최근에는 내수위축으로 자금위기에 봉착한 반면 디엔씨테크는 해외 거래업체의 투자와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안정권에 올라섰다.

벤처붐 조성과 코스닥 활황으로 수많은 벤처기업이 창업했으며 거의 「묻지마 투자」가 단행되던 지난해 하반기에서 올초까지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국내 벤처기업들의 대다수가 A사와 같은 딜레마에 빠졌다. 비단 초기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코스닥에 등록, 거금을 확보한 중견 벤처기업들이 스타 대접을 받고 있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우물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중기청이 공인한 법적(벤처기업특별법) 벤처가 거의 1만개에 육박하고 있고 그동안 중소기업으로 분류되던 기업들이 신기술 냄새가 나는 상호로 이름을 바꾸고 벤처로 둔갑(?)하고 있지만 국내 벤처기업들의 대부분은 단지 「국내용」일 뿐이다. 좁은 내수시장에서 아옹다옹 다툴 뿐 세계시장에 명함을 내밀고 당당히 경쟁하는 벤처기업은 극히 드믈다.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벤처캐피털이나 벤처 관련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코스닥시장의 단기급등으로 국내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일부 선발업체들이 해외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계 벤처투자에 주력할 뿐 현지 외국벤처에 투자해 이익을 낸 경우는 거의 없다. S창투사의 관계자는 『최근에는 나스닥시장마저 침체되면서 해외투자실패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업계 사정을 전했다.

이같은 현상은 시작부터 좁은 내수시장에 타깃을 두고 비즈니스모델을 만들고 마케팅을 추진한데서 비롯된다. 또 창업을 너무 쉽게 결정하다보니 비즈니스모델이 세계 표준(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아 선뜻 해외시장에 진출하고 싶어도 희망사항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벤처인큐베이팅 전문가인 L씨는 『최고경영책임자(CEO)의 자질이 문제다. 국내는 아직 벤처 비즈니스를 충분히 이해하고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세계화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CEO가 적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제는 벤처기업인들 스스로 우물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날 수 있도록 국제적인 감각을 찾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창업 및 초기 벤처기업 역시 비즈니스 목표를 실리콘밸리에 두고 정신을 재무장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벤처캐피털·벤처인큐베이팅 등 벤처지원업체와 공공 벤처지원기관들도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과 관련 인프라 지원에 무게를 실어줘야 우리 벤처가 더욱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