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정보통신 산업을 움직이는 사람들>39회-음반업계

국내 음반산업이 본격적인 틀을 갖춰나가기 시작한 것은 토종자본을 바탕으로 창작음반제작이 활성화된 해방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음반업계 인맥은 1964년 설립된 대한레코드제작가협회(현 한국음반산업협회)의 초창기 멤버인 지구레코드·신세기레코드·대도레코드·성음·서라벌레코드 등 구세대 음반제작사들과 80년대 후반 이후 대중가요 기획 및 매니지먼트업을 내세워 발빠르게 성장해온 도레미미디어·대영AV·신촌뮤직·월드뮤직·예당음향 등 신세대 음반기획사들로 크게 나뉜다.

음반산업을 일군 1세대들은 50∼60년대 음반업계에 뛰어들어 차근차근 회사를 키워 자수성가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외국계 음반의 라이선스 제작을 대행했으나 점차 가요·국악·가곡 등 창작음반제작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성장했다. 지금까지 업계에 남아 있는 사람은 몇명되지 않으며 대다수가 작고했거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상태다.

음반업계 원로급을 대표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임정수 음반산업협회 명예회장(77·지구레코드 회장)을 들 수 있다. 올초까지 협회장을 맡을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해온 임 회장은 65년 제2대 음반협회장 취임 이후 30년이 넘도록 업계를 이끌어 왔다. 현재 임 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개인사업 이외의 대외 활동을 자제하

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 회장과 더불어 음반업계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고 있는 성음의 이성희 회장(74)은 지금은 아들 승배(현 성음 대표)·홍배(전 유니버설뮤직코리아 대표)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현직에서 물러나 있다. 폴리그램코리아를 합작설립하면서 성음을 당대 최고의 회사로 만들기도 했던 이 회장은 73년 8대 협회장을 지낸 이후 수차례에 걸쳐 음반협회 일을 맡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초대 협회장을 지낸 신세기레코드 강윤수 회장과 11대 서라벌레코드 홍순영 회장은 작고했다.

그러나 음반산업의 초기 인물들은 신세대 음반사들이 10대 댄스가수들로 음반시장의 변화를 주도하며 입지를 넓히는 동안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차츰 CD를 하청 제작해 주는 복제업자로 영역이 축소된 상태다.

이같은 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지난 3월 이뤄진 제26대 음반협회장 선거에서는 8선에 도전한 임정수 회장이 피선에 실패, 물러나고 신세대 음반사들을 등에 업은 현 박경춘 회장(50·아세아레코드 사장)이 당선됐다. 말그대로 신구세력의 세대교체가 이뤄진 결과였다.

신세대 음반기획사 대표들은 1세대들과는 달리 대중가요 붐을 타고 대부분 90년대 이후 급성장한 인물들이다. 연예매니지먼트라는 신업태가 유행하면서 발로 뛰면서 스타들을 발굴한 매니저 출신이 많다.

현재 음반협회 이사를 맡고 있는 도레미미디어 박남성 사장(48)도 81년 임하룡·심형래 등 개그맨 매니지먼트에 이어 84년 가수 최진희를 발굴하면서 업계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도레미가 리딩업체로 부상한 것은 97년 김건모·신효범·강수지 등 대형가수들을 영입하면서부터다. 현재는 조성모 등 스타급 가수들을 거느리고 있다.

10대 소녀그룹 「핑클」로 잘 알려진 대영AV 유재학 사장(55)도 92년 연예제작자협회 초대회장을 지낸 연예기획사 출신이다. 또 음반업계 최초로 코스닥시장에 등록한 SM엔터테인먼트의 대주주 이수만 PD(48)는 「사월과 오월」에서 활동한 가수 출신. 89년부터 한동준·현진영·유영진 등의 음반을 기획하면서 제작자로 나섰다. 이 사장은 90년대 들어 HOT·SES·신화 등 10대 댄스그룹을 발굴, 음반시장에 댄스가요 열풍을 몰고 왔다.

이밖에 신생 음반유통회사 IKPOP를 맡고 있는 동아뮤직 김영 사장, 신촌뮤직 장고웅 사장, 예당음향 변두섭 사장 등이 신세대 인맥중 하나다.

반면 신구세대로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음반유통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대형 음반사들의 인맥도 음반업계의 한축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 인물로는 충남방적 출신으로 현 음반산업협회 해외협력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울음반 이의종 사장(60), 음반유통 및 복각음반기획의 대가로 유명한 신나라뮤직의 정문교 사장(48), 웅진그룹 출신의 기획통인 웅진미디어 유재면 사장

(45) 등이 있다.

음반업계를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큰 축은 외국계 음반직배사들이다. 88년 EMI가 처음으로 한국에 지사를 설립, 직접 음반배급에 나서자 음반업계는 「문화침탈」 「산업종속」이라며 크게 반발했지만 이미 직배사는 국내 음반시장의 25∼30%를 차지할 만큼 영향력이 커졌다.

이들 음반직배사 대표는 대부분 본사가 내정한다. 대다수가 외국에서 경영학석사과정(MBA)을 마친 전문 경영인들이 선정되기 때문에 국내 인맥이라고 보기 어렵다.

워너뮤직코리아의 심용섭 사장(41)이 대표적 경우다. 심 사장은 지난해까지 EMI코리아에서 대표이사를 지내다 워너그룹 본사에서 발탁, 워너뮤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같은 발탁 뒷배경에는 해외 학력과 인맥이 작용했다는 후문도 있다. 소니뮤직 윤여흘 사장(47) 역시 MBA출신의 전문경영인이다. 하지만 윤 사장은 일본 고용문화 탓인지는 몰라도 계속 재신임을 얻어 10년 가까이 대표를 맡고 있다. 직배사중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CEO를 지낸 인물이다.

반면 국내 음반업계에서 성장해 직배사 사장자리까지 오른 인물도 있다.

최근 록레코드에서 유니버설뮤직으로 자리를 옮긴 왕배영 사장(37)이 대표적이다. 비록 국적이 대만이어서 동업자이자 매형인 이찬희 사장(41)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긴 하지만 왕 사장은 피노키오·황규영·어스 등을 발굴해 데뷔시키는 등 국내 가요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이 때문에 왕 사장은 록레코드 시절에도 가요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같은 공적에 힘입어 유니버설 사장자리에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EMI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영인 사장(41)도 국내 가요계 출신으로 엄정화·김현정 등 가요음반제작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음반직배사 인력들은 일단 직배사에 들어가면 다시 국내 제작사로 돌아오지 않는 데다 일부 인력들은 마치 개인사단처럼 함께 이곳저곳 회사를 옮겨다니면서 인력수급에 큰 차질을 빚는다는 지적도 있다.

차세대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신생 음반기획사 사장들도 이제는 음반업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국내 음반사나 직배사를 거치면서 경험을 쌓은 뒤 독립해 회사를 설립한 경우로 젊은 패기와 참신한 아이디어로 음반시장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내 마이너 레이블로는 가장 활발히 해외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굿인터내셔널 이근화 사장, 자우림·퍼니파우더 소속사인 난장뮤직 김병찬 사장, 가요편집앨범으로 두각을 나타낸 틴팬앨리 김규남 사장, 천리안과 온오프라인 음악사업을 공동기획하면서 자리를 잡은 이클립스뮤직 임기태 사장, EMI에서 최근 독립한 아이드림미디어 김정호 사장, 전 BMG 사장 출신으로 중소 음반유통사 드림비트를 설립한 박승두 사장 등이 있다.

인터넷 붐을 타고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온라인 음반사 및 유통사 사장들도 이제는 음반업계의 새로운 인맥으로 볼 수 있다.

국내 처음으로 유료 음악사이트 렛츠뮤직을 구축한 나눔기술 장영승 사장은 도레미미디어의 지분 40%를 확보하면서 명실공히 음반업계의 일원이 됐다. 두루넷의 음반사업부 CD프리와 합작, 온오프라인 음반유통사 엠앤올을 설립한 이광용 사장도 전 음반도매상협회장을 지낸 유통전문가다. 제일제당에서 음반사업을 재가동하면서 설립한 드림뮤직 윤정수 사장은 방송사PD 출신이며 옥시그룹 오투뮤직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이성희 팀장은 서울음반 출신이다.

이밖에 음반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음반산업계를 움직이는 인물로는 21세기음악산업진흥재단 서희덕 이사장(뮤직디자인 대표)과 최근 문화관광부로부터 공동물류사업 추진주체로 지정받은 케이알씨넷을 맡고 있는 음반복제업협동조합 김종덕 이사장(에버그린 대표), 음반도매상협회 김충현 회장 등이 있다. 또 관련 단체장으로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김영광 회장, 연예제작자협회 엄용섭 회장, 한국예술실연자단체연합회 윤통웅 회장 등이 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