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지역 공단 명·암>부평·남동공단

◇올초 IMF로 인한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 다시 기지개를 폈던 산업공단이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현대건설 및 대우자동차 사태 등으로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있다. 산업공단의 공장가동률은 사상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우울한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특히 대우자동차 협력업체가 밀집한 부평 및 남동 공단에는 초겨울에 바람이 더욱 매섭다.

먹구름만 있는 것도 아니다. IMF당시 기아자동차 사태 등으로 최악의 위기를 경험했던 반월·시화 공단은 불황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활력에 차 있다.

수도권 주요 산업공단인 부평·남동 공단과 반월·시화 공단의 분위기를 살펴봤다.◇

◆부평·남동 공단 - 대우차 부도로 찬바람 쌩쌩

『연초에 비해 가동률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나 당장 폐업을 하거나 조업을 중단한 입주업체는 많지 않습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내년 경기를 어둡게 보고 있고 미래가 불투명하다보니 신규 개발이나 투자에 일체 나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부평사무소에서 현황 파악 업무를 맡고 있는 이주완씨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기업활동이 크게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이미 부평지역 경제에도 커다란 주름살이 생겼다. 경기에 가장 민감한 분야가 음식점과 택시. 이 지역 입주업체 임직원들은 최근 들어 음식점 여러 곳이 문을 닫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취재 중 만난 택시기사는 유동인구가 크게 줄어들어 사납금조차 채우기 어려워졌다며 울상이다.

부평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욱 어려운 것은 대우자동차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 한 주민은 『부평에서 대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 대우차가 청산될 경우 지역 경제는 곧바로 파멸을 맞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경기가 갑자기 나빠진 것은 대우차가 정문과 후문의 위치를 맞바꿨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이 지역의 정서는 흉흉하다.

수정진동자 제조업체인 대원정밀의 김기웅 사장은 『전에는 사원모집 벽보를 정문 앞에 붙여놓아도 일년 내내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최근 들어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문의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며 『전자부품 분야도 3D 업종에 가까워 외국인 근로자들을 많이 쓰는데 요즘 같으면 굳이 외국인 근로자를 데려다 쓸 필요도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부평지역 경기가 계속 침체일로로 치달을 경우 이 지역에 근무하는 수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앞으로 적지 않은 고민거리로 등장할 전망이다.

이 지역에 입주한 전자관련 업체들도 직접 대우차와 관련이 있는 기업은 거의 없지만 경기가 극도로 악화되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청호전자통신의 오동일 이사는 『수정진동자의 세계적인 수요가 늘어 당장은 걱정이 없지만 국내 경기가 워낙 바닥까지 가 내년부터가 걱정』이라고 우려한다. 김기웅 사장도 『아직까지는 매출이나 자금상황 모두 괜찮은 편이지만 워낙 경기가 악화되고 있어 자금 수요가 몰리는 연말이 걱정』이라고 말한다.

그나마 이동통신·인터넷 등 정보통신 분야의 부품 및 세트 업체들은 아직까지 수요가 살아있고 수출까지 받쳐주고 있어 상황이 다소 좋은 편이지만 오디오·가전 등 단순 세트 및 부품 업체들은 점점 상황이 열악해지고 있다.

특히 전자산업 경기에 가장 민감한 PCB업체들의 경우는 한계상황에까지 직면했다. 부평에 있는 견본용 PCB 생산업체들은 세트업체에서 신제품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다보니 지난 8월 이후 일감을 찾지 못해 대부분 일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또 양산 전문 업체들도 근근이 생산은 하고 있으나 수요가 없다보니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채산성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산업단지공단이 집계한 자료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9월 이 지역의 생산과 수출 실적은 전월 대비 각각 6.6%와 14.2%씩 크게 감소했다. 올해초부터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여오던 생산과 수출 실적이 반전된 것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부평에 자리잡은 기업들이 대부분 신규 설비투자는커녕 내년도 사업계획조차 아직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지역의 한 업체 관계자는 『내년 경기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사업계획 수립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앞으로 목표는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는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관계자도 『지난해 같으면 예측이 가능해 뭐든 준비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너무 갑자기 경기가 가라앉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한다.

부평의 전자관련 업체들은 이 지역 경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색된 자금이 돌고 기업이 활발히 신규 개발과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심리적인 불안요인을 제거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으로 입을 모은다. 또 정부가 지금까지 벤처위주의 정책을 펴옴에 따라 굴뚝기업들의 극도로 떨어진 사기를 높여주어야 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대원정밀의 김기웅 사장은 『중소제조업체들이 고용창출에 큰 기여를 하고 있고 정보기술(IT)산업도 제조업이 뒷받침이 돼야 일어설 수 있다』며 『정부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제조업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