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정부>IT업계 동향-사활건 수주경쟁 불꽃

「e정부 시장을 잡아라.」

전자정부법 제정 등 전자정부(이하 e정부)를 구현하기 위한 정부 각 부처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는 것에 힘입어 중대형 컴퓨터 및 솔루션·시스템통합(SI)·네트워크 등 정보기술(IT) 관련업체들이 e정부를 포함한 내년 공공부문 IT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대장정에 돌입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는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돼 봐야 하겠지만 내년도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공공부문 IT 관련예산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성급한 관측이지만 사상 최대의 공공부문 IT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게 국내 IT업계의 희망섞인 분석이다. 정부가 상정해 놓은 2001년 정보화예산 규모는 총 1조4100억원이며 이중 순수 e정부 구축 부문 규모는 4600억원이다.

여기에다 정부는 내년에 경기 침체 여파로 민간부문 IT 관련투자가 다소 줄어들 것이란 판단 아래 경기 부양 차원에서 공공부문 IT 예산 집행 시기를 당초보다 앞당길 것으로 보여 연말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IT업체들은 조기발주가 예상되는 공공 IT 프로젝트를 탐문하는 등 각 정부 부처 및 관련기관들의 문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한국HP에서 공공부문 영업을 총괄하고 있는 심상국 상무는 『유가 폭등, 반도체 수출 증가세 둔화 등 복합적인 악재가 겹쳐 내년에 금융·제조·유통·서비스 등 민간부문의 IT 투자는 크게 위축될 전망』이라며 『모든 시스템 벤더는 물론 SI·솔루션업체들 모두 공공부문 IT 시장을 전략사업부문으로 선정해 놨을 것으로 점쳐진다』고 진단했다.

특히 올해의 경우 인터넷 선풍을 타고 닷컴 벤처기업 중심으로 IT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으나 내년에는 이들 벤처 닷컴기업들의 IT 투자는 거의 정체 상태에 머물 것으로 보여 올해처럼 이들 벤처 닷컴기업이 IT업체의 효자 노릇을 하기는 힘들다는 게 IT업체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결국 믿을 수 있는 시장은 공공부문밖에 없다는 것.

이에 따라 중대형 서버·솔루션·SI·네트워크업체들은 내년도 사업의 무게중심을 공공부문에 둔다는 기본 전략 아래 조직 정비와 인력 보강을 서두르는 한편 협력업체와의 공조체제 확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1세기형 한국판 IT 뉴딜정책」으로도 지칭될 수 있는 공공부문 IT 시장을 잡기 위한 IT업계의 수주 총력전이 벌써부터 뜨겁게 달아오른 것이다.

이처럼 국내 IT업체들이 공공부문 IT 시장에 역점을 두는 까닭은 시장 자체도 크지만 공공 프로젝트를 수주함으로써 얻게 되는 부수효과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후지쯔의 공공부문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응기 상무는 『공공부문에서 납품 실적이 있다는 것은 그 회사의 제품 및 솔루션에 대한 신뢰성을 검증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공공분야에서 레퍼런스 사이트를 확보하면 여타 공공분야는 물론 민간부문 공략이 훨씬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공공부문 실적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보증수표나 다름없다는 것.

특히 내년처럼 경기가 침체 국면으로 빠져드는 경우에는 프로젝트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IT업체들은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공공부문 IT 시장을 공략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IT업계가 내년 공공부문 IT 인프라 구축사업에 무게중심을 두는 또 다른 배경은 현금유동성 확보 측면도 고려된 것으로 분석된다.

사실 민간부문에서는 제품을 공급했거나 전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도 제때 대금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특히 올 연말부터 이슈화하고 있는 기업의 자금난이 심화될 경우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 기업도 한순간 도산할 수 있다는 가정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될 경우 IT기업은 헛장사를 한 셈이 된다. 그러나 공공부문은 절대 그 같은 상황이 발행하지 않는다. 여기에다 일부 대형공사의 경우 선수금까지 받을 수 있어 내년 공공부문 전산 시장은 국내 IT업계에는 사막의 오아시스나 다름없다.

연말도 잊은 채 내년도 공공 IT 시장 공략대책을 수립하고 있는 주요 IT업체의 움직임을 보면 이들이 내년도 공공부문 IT 시장에 걸고 있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 감지할 수 있다.

한국HP·한국IBM·컴팩코리아·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한국후지쯔·삼성전자 등 시스템 벤더는 물론 한국오라클·한국인포믹스·SAP코리아·SSA GT코리아·바안코리아·한국CA 등 주요 솔루션업체들은 영업정보망을 총동원, 수주 가능한 프로젝트 목록을 체크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됐다.

우선 중대형 서버업체들은 내년 국내 공공부문의 IT 흐름이 정부 부처 중심의 인프라 구축사업보다는 기본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대국민 서비스 향상 쪽에 무게중심이 실릴 것으로 내다보고 시장 공략 방안을 짜고 있다.

이는 현재 정부 모든 부처에는 e메일을 비롯한 전자문서교환(EDI) 기반의 전자문서결제시스템이 거의 완벽하게 구축돼 있어 중앙정부 고유업무의 전산화사업보다는 대국민 서비스와 관련된 전산 프로젝트를 집중적으로 따낸다는 것.

현재 이들 서버 벤더업체들이 탐내는 대표적인 공공부문 IT 프로젝트는 △시군구의 민원업무 온라인서비스 구축사업 △부동산을 비롯한 5대 민원정보의 행정기관간 공동활용체계 구축사업 △재해복구시스템 구축사업 △지리정보체계(NGIS) 구축사업 △지능형 교통정보체계 구축사업 등이다. 또 올해부터 부산광역시를 시발로 불붙기 시작한 사이버시티 및 지방 IDC센터 구축사업도 시스템 벤더업체들이 기대하는 사업부문 중 하나. 서울시는 서울을 21세기 아시아 IT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 사이버시티 구축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을 비롯해 주요 지방자치단체들도 대규모 IDC 구축 청사진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밖에 현재 정부가 입안중이거나 검토중인 금융정보원 돈세탁 방지시스템, 형사 사법망, 지상군 전술지휘통제자동화체계(C4I) 구축사업 등도 주요 시스템 벤더 및 SI업체가 손꼽고 있는 노른자위 공공부문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특히 올해 주요 시스템 벤더업체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공공부문 IT 프로젝트는 아웃소싱사업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는 정부가 공공부문 구조조정 작업의 일환으로 주요 정부 및 정부기관의 전산시스템을 외부에서 아웃소싱하도록 독려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미 올해 관세청이 삼성SDS와 전산 아웃소싱 계약을 체결했으며 특허청은 한국HP와 LGEDS에 전산시스템을 맡기기로 했다. 내년에는 3∼4개 정부기관이 전산시스템을 아웃소싱 시장에 내놓을 것이라는 게 서버시스템업계의 관측이다.

올해 초고속 국가망이 본격 개통됨에 따라 관련장비업체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초고속 국가망은 국가정보화를 기치로 가장 앞선 기술로 알려져 있는 비동기전송방식(ATM)으로 구축된 통신망이다. ATM 장비는 다른 통신장비와 달리 국내 업체들이 유난히 강세를 나타내고 있는 분야다. 이는 국내 업체들이 90년대 중반부터 정부의 초고속국가망 관련장비 개발정책에 직간접으로 관여, 기술력을 상당부분 쌓아왔기 때문이다. 초고속 국가망은 크게 대형국사에 들어가는 코어 ATM 스위치와 소형국사에 들어가는 에지 ATM 스위치, 그리고 가입자단에 설치되는 ATM 라우터와 소형 ATM 스위치로 망이 구성된다. 코어 ATM 스위치는 삼성전자·LG전자·한화/정보통신·대우통신 등이 장비를 개발, 납품했으며 에지 ATM 스위치업체로는 삼성·LG·LG전선·한화/정보통신·대한전선·호림테크놀로지 등이 관련제품을 출시했다. 최종 가입자단에 연결되는 ATM 라우터에 대한 국산화도 이뤄져 케이디씨정보통신·콤텍시스템·팍스콤·에드팍테크놀로지 등 많은 업체들이 관련제품을 출시했다.

초고속 국가망은 오는 2005년까지 총 3만2000여곳의 국가 기관·관공서·학교 등에 연결되며 데이터 처리 용량도 해마다 증가될 전망이다. 국내 ATM 장비업체들은 국내에서 검증받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미 삼성전자는 미국의 후발통신업체인 텔리전트에 자사의 ATM 교환기인 스타레이서를 공급중이며, LG정보통신·미디어링크 등도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머잖아 해외 여러 곳에서 국산 ATM 장비를 채택해 통신망을 구축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게 될 전망이다.

SI업체가 공공부문에 거는 기대는 시스템 벤더업체보다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지난 국제통화기금(IMF) 당시 일감을 구할 수 없어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아픔을 겪었던 대형 SI업체들은 내년에 또 그 같은 악몽이 재현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주력 SI 시장 중 하나인 금융·제조·유통·서비스 부문 SI 시장은 벌써 거의 바닥이 드러났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어 SI업체들은 공공부문 IT 시장에 사운을 건다는 각오로 공략 채비를 하고 있다.

중소 SI업체들도 사정은 절박한 듯하다. 아무리 둘러봐도 공공부문밖에는 시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소 SI업체들은 외국계 시스템 밴더와 솔루션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맺어 니치시장을 개척해 나간다는 복안을 세워놓고 있다.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을 비롯해 전사적자원관리(ERP)·고객관리시스템(CRM)·그룹웨어·방화벽 등 솔루션업체들도 정부의 e정부 구상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오라클·한국인포믹스·한국사이베이스·한국컴퓨터통신 등 주요 DBMS업체들이 내년 공공부문 시장을 비교적 낙관적으로 보는 까닭은 대규모 프로젝트가 잇따라 쏟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정부 부처별로 구축돼온 개별 전산망을 하나의 DB로 묶는 전산·데이터 통합사업이 활기를 띨 것이라는 분석에 근거를 두고 있다.

『e정부의 궁국적인 목표는 대국민 서비스 향상이고 국민은 하나의 창으로 정부를 상대하면 되는 것』이라고 DBMS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적하면서 『올해부터는 이 같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가 각 정부기관에 산재한 데이터를 상호연동시키고 통합하는 작업을 본격 추진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그동안 기업용 비즈니스 솔루션으로 간주돼온 ERP·CRM·지식경영시스템(KMS) 공급업체들은 정부가 수립한 내년도 정보화 프로젝트 목록에 흐믓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이들 업체들은 공공부문에 별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공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정보통신부 산하 우정사업본부가 ERP와 CRM 패키지를 도입, 정부 및 공공기관도 기업용 비즈니스 솔루션을 구매한다는 선례를 남겼다. 이를 계기로 병무청·국세청·관세청 등도 조만간 ERP 및 CRM 패키지를 설치, 국민들이 「원스톱 민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어 기업용 패키지업체들을 들뜨게 하고 있다.

한국NCR의 경동근 부사장은 『오는 2001년은 그동안 민간기업 중심으로 형성돼온 데이터웨어하우스(DW)·CRM·KMS 등 기업용 솔루션들이 공공부문에 본격 투입되는 원년으로 기록될 전망』이라면서 앞으로 2∼3년 후면 공공부문 시장이 민간기업용 시장에 버금갈 정도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희영기자 h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