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벤처스타의 꿈을 꾸며 창업한 M사는 현재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한때 20억원대의 펀딩을 추진하며 의욕이 넘쳤으나 투자를 약속했던 개인투자자들이 발을 빼 요즘은 운전자금 부족으로 업무가 마비된 상태다. 20명이 넘던 직원들은 줄줄이 빠져나가 현재는 대여섯명만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기술과 아이디어만으로 창업하는 벤처기업에 종자돈(시드머니)을 댄다는 의미에서 「천사(엔젤)」로 불리는 개인투자가들로 인한 벤처기업들의 피해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벤처기업에 투자해 각종 비리를 일삼는 이른바 「블랙엔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의 벤처산업에 진정한 엔젤은 드물다는 것이 한결같은 지적이다.
특히 코스닥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벤처붐이 하늘이 찌를 때는 벤처기업의 내용도 모른 채 「묻지마 투자」를 감행했던 개인투자자들이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벤처를 외면하고 있다. 간단한 비즈니스 플랜만 인터넷에 올려놓아도 단 몇분만에 불특정 다수의 개인투자자들로부터 수십억원의 펀딩이 가능했던 얘기는 이제 전설처럼 들린다.
개인투자자들의 벤처투자 열기를 반영, 우후죽순 출범한 각종 엔젤클럽도 요즘은 활동이 극도로 부진하다. 자금조달을 원하는 기업들은 많으나 정작 투자할 개인들이 부족하다보니 엔젤마트와 같은 투자설명회(IR)를 열 의미가 없다. 김철우 한능엔젤그룹 사무국장은 『엔젤마트에 참여하는 사람도 줄어들었지만 참여하더라도 투자를 원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 분위기가 썰렁하다』고 전했다.
벤처투자로 운좋게 거금을 확보한 엔젤들도 최근에는 벤처를 외면한 채 상대적으로 안전한 은행문을 두드리고 있다. 전일선 전 미래에셋브이에이(구 한국드림캐피탈) 사장은 『벤처기업의 거품이 많이 줄어들어 지금이 투자의 적기임에도 불구, 금융시장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현금을 많이 갖고 있는 개인들조차 꼼짝을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코스닥 침체와 벤처위기론으로 불안감이 높아지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벤처비즈니스를 충분히 이해하고 벤처에 애정을 갖고 있는 진정한 엔젤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즉, 개인들이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속성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고수익만 쫓는다는 얘기다.
이제는 벤처를 바라보는 개인들의 시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나만 잘되고 보자」는 식의 재테크만을 위한 벤처투자로는 위기에 빠진 벤처를 되살리는 데 전혀 도움이 안된다. 엔젤은 벤처캐피털과 함께 초기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핵심 인프라로써 벤처 육성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인식전환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벤처의 본고장 실리콘밸리에서도 벤처자금의 주류는 벤처캐피털이 아니라 바로 엔젤이다. 엔젤은 또 벤처 성장단계별로 볼 때 가장 초기에 투자, 위험이 크다. 때문에 누구보다도 벤처비즈니스를 가장 잘 이해해야 하며, 단순한 자금지원 외에도 개인의 경험이나 네트워크까지 지원하는 것이 진정한 엔젤의 본질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벤처인들 모두가 90년대 중반 엄청난 위험을 안고 있는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시드머니와 함께 각종 노하우를 지원했던 엔젤의 유래와 의미를 되새겨 진정한 엔젤을 육성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