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주말연속극 「엄마야 누나야」에는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띈다.
「육남매」 이후 드라마 나들이가 처음인 장미희가 그 주인공.
극중 장미희가 맡은 영숙이라는 인물은 박복한 팔자를 타고난 여자다.
집안이 어려워 갓스물의 어린 나이에 애딸린 홀아비한테 시집을 가지만 남편이 반신불수가 된 이후 대리모 노릇까지 하게 되는 기막힌 사연을 갖고 있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외판일로 벌어다준 돈으로 내연의 남자가 노름을 해 하나뿐인 딸과 떨어져 도망다니는 신세다.
가녀린 음성에 눈물연기가 낯설지 않은 장미희는 이렇게 우리 곁에 다시 돌아왔다.
「육남매」에서 『똑(떡) 사세요』를 외치며 연약해 보이지만 기구한 삶을 억척스럽게 개척하는 전형적인 우리네 여인상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따뜻한 가족드라마가 그리워지는 계절에 한동안 뜸했던 중년 여배우들이 브라운관으로 돌아오고 있다. 특히 이들의 변함없는 연기력과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은 겨울 안방을 훈훈하게 한다.
일일 연속극 「온달왕자들」의 최명길(영숙역)은 출산이후 한층 성숙해진 연기로 주부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극중에서는 「영숙」이라는 이름보다 일곱살 된 딸 「샛별엄마」로 통한다.
샛별이의 아빠는 큰 아들이 셋이나 되는 가구공장 사장으로 나이 차이도 심한데다 얽혀있는 여자만 넷이다. 전 부인 아들들의 냉대도 심하다.
하지만 영숙은 이 고단한 일상을 극성스럽지 않게 차분히 풀어나가는 캐릭터다. 81년 연예계 입문 이후 최명길이 줄곧 보여준 도회적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맥이 닿아 있다고 할까.
「온달왕자들」에서도 그녀는 매일 저녁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서 선」 누이 같은 인상으로 시청자들을 TV앞으로 끌어들인다.
월화 드라마 「아줌마」에서 제3의 성(性)인 「아줌마」의 존재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원미경은 좀 색다르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풋풋하고 발랄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 역시 편안한 연기만은 변함없다. 그녀는 건망증이 심하고 푼수 기질이 다분한 극중 오삼숙역을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잘 소화해낸다.
아침에 일어나 메마른 목소리로 『남편이라는 인간이 별 꼴값을 다 떨고 다니는데도 아침 되면 꾸역꾸역 일어나잖아. 식구들 입에다 밥이랑 국이랑 넣어주겠다고 말이지...』라고 읊어대는 장면만 봐도 그렇다.
주연급으로 발탁된 배우들 외에 고두심·김창숙·김자옥 등 중견 배우들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다. 이들은 탄탄한 연기력과 친근한 이미지로 드라마의 재미를 더하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중견급 스타들이 다시금 인기를 얻는 것은 최근 불고 있는 복고열풍과도 무관하지 않다.
복잡다단해지기만 하는 사회에서 예전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는 해석이다. 문득 『요즘 그 배우는 뭐하지?』라고 안부가 궁금해지는 옛날 배우를 오랜만에 볼 수 있다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이러한 중견 배우들의 복귀는 연기자층을 두껍게 하고 프로그램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현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MBC 제작국의 관계자는 『가족 드라마는 늘 주변에서 접하는 소재로 만들어져 인기를 끈다』며 『이런 분위기를 타고 중견 탤런트들의 연기 터전도 넓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