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의 악학궤변> 비틀스의 베스트 앨범 「1」

비틀스의 베스트 앨범이 나왔다. 앨범 타이틀은 「1」이다. 참 단순하고 명쾌한 타이틀처럼 보이지만 그 내막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소름이 끼치는(?) 타이틀이 아닐 수 없다. 타이틀의 「1」의 의미는 싱글 차트 1위를 의미한다. 즉, 이 베스트 앨범은 싱글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한 곡들만 모아놓은 것이다. 세상의 어느 아티스트가 CD 한 장에 넘버원 송을 가득 채울 수 있단 말인가.

여자 가수 중 가장 많은 넘버원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는 머라이어 캐리가 98년 「#1’s」라는 베스트 앨범을 낸 적이 있다. 그녀는 모두 14개의 1위 곡을 갖고 있는데 당시 베스트 앨범은 다소 함량미달인 느낌이었다. 하지만 많은 넘버원 곡을 한 앨범에서 접하는 것도 꽤 묘미가 있었다.

그렇다면 비틀스는 몇개나 되는 넘버원 곡을 갖고 있을까? 비틀스는 8년 남짓 활동하는 가운데 빌보드 차트에 무려 20곡이나 되는 1위곡을 내놓았다. 이번 앨범 「1」에는 그 스무곡 모두가 실려 있을까?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비틀스의 앨범은 영국 발매분과 미국 발매분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영국에서 1위에 오른 곡이 미국에서 1위를 못했을 때도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EMI가 각국의 합집합으로 이번 앨범을 만든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번 「1」의 수록곡은 64년 5월 미국에서 1위를 차지했던 「Love Me Do」로 시작해 70년 6월 마지막으로 양국에서 1위를 차지했던 「The Long And Winding Road」로 끝난다. 따라서 비틀스를 떠올리며 『이 곡은 분명 있을 걸』하는 곡들은 실제 거의 수록돼 있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Yesterday」 「Let It Be」 「헤이 주드」 같은 노래들 말이다.

보통 음악CD가 허용하는 최대 시간은 80분이다. 이 앨범에는 79분 12초의 러닝타임 동안 모두 27곡의 넘버원 히트작들이 빼곡하게 들어 있다. 하지만 시간적 제약 때문에 영국 최초의 넘버원 싱글인 「Please Please Me」는 실리지 못했다.

곡이 넘쳐 다 수록하지 못하다니!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비틀스라는 거인의 위대함일 것이다. 그들이 해체한 지 3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와 비견될 밴드는 나오질 못했다. 이번 베스트 앨범은 바로 이같은 사실을 노골적으로 상기시킨다고 볼 수 있다.

앨범 「1」이 소름끼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이 앨범은 아주 매력적이다. 비틀스 베스트 앨범 가운데 백미다. 알찬 앨범이라 부를 수도 있지만 그보다 꽉찬 앨범이라 부르는 게 더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