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의 독서산책>노스트라다무스의 둔갑

에이드리언 베리 저 「갈릴레오와 킬러나무」

역사는 지나고 보면 필연적인 사건들의 연속이지만, 그런 사건들도 당대에는 그야말로 우연의 사건이었던 것들이 많았다. 또한 당대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만 후대가 이를 의미있는 일로 해석해버린 경우도 많다. 세기적 예언가인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시만 해도 그렇다. 그의 예언시 가운데는 이런 구절이 있다.

무고한 사람들의 피가 런던에 뿌려지리라

스물셋 중 여섯(씩)이 번갯불에 불타고

늙은 여인이 높은 자리를 잃으리라

같은 종파의 수많은 사람이 살해되리라

후세의 사가들은 이 대목이 1940년 독일의 런던대공습을 예언한 것이고 「늙은 여인」은 성바울성당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 시가 영국 여왕 메리 1세의 신교도 화형사건을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는 이론(異論)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주장은 노스트라다무스의 모든 시가 당시 사건들에 대한 기록일 뿐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당시 영국에서는 신교도를 화형시킬 때 다리 사이에 화약을 매달아서 불길이 닿으면 터지도록 했다. 그러니까 시에서 「번갯불」은 바로 이 상황을 묘사한 것이며 늙은 여인은 박해에 앞장섰던 메리 1세가 된다. 이론가들은 신교도였던 노스트라다무스가 이 시를 메리 1세를 저주하며 썼다고 주장한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시들은 이처럼 교회와 정부의 분노를 불러 일으키지 않기 위해 반(半)암호 형태로 쓰여져 있는데 이것이 후대에 들어 예언시로 둔갑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스트라다무스의 시들이 런던 대화재, 프랑스혁명, 히틀러의 출현, 워터게이트사건 등을 예언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는 이유는 어째서 일까. 저자는 그것이 어쩌다 맞은 우연일 뿐이라고 결론짓는다. 아울러 그는 예언가들에게서 나타나는 몇가지 공통적인 특징들을 제시하고 있다.

①되도록 많은 예언을 하며 실현되면 보아란듯 자랑하지만 실현되지 않은 것은 개의치 않는다. ②상징적인 표현을 많이 쓰며 뜻이 애매모호해야 한다. 뜻이 명확하면 틀리기 쉽지만 가능성이 있는 말은 재해석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③성공할 때는 신의 은총으로 돌리며 신의 메시지를 잘못 해석한 것에 대해서는 자신을 탓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신을 원망하게 된다. ④재앙을 예고한다. 사람들의 주의를 확실하게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천문학자 갈릴레이에 대한 오류도 비숫한 사례다. 과학자의 소신으로 해석되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Eppur si muove)」라는 묘비명이 후대에 조작됐다는 것은 이제 널리 알려진 얘기다. 종교재판에 회부될 즈음 갈릴레이는 로마의 호화로운 아파트에서 하인을 부리고 포도주를 즐기는 일흔살의 평범한 노인일 뿐이었다. 그가 종교재판에 회부된 것은 「두 대우주체계에 관한 대화」라는 저서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돈다는 책의 내용보다는 책의 표지에 그려진 돌고래(사실은 출판사의 심벌마크였다)그림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돌고래(daulphin)는 당시 신교국가인 프랑스 건국신화와 관련된 동물이었고 프랑스 황태자를 뜻하는 도핀(dauphin)이라는 말도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편협한 스콜라 철학에 사로잡혀있던 로마의 구교도관리들이 책표지의 그림을 프랑스의 신교를 지지하는 뜻으로 해석함으로써 갈릴레이를 종교재판에 회부했다는 얘기다.

「갈릴레이와 킬러나무(원제 Galieo and Dolphins)」는 현대문명과학의 권위자인 저자가 일반적으로 교과서나 백과사전이 가르치지 않고 있는 인류역사의 33가지 비밀들(혹은 잘못 알려진 것들)을 칼럼형식으로 담아 내고 있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아직까지는 추론에 불과한 것이긴 하지만 사물을 이해하는 데 왜 균형감각이 필요한가를 역설해준다.

<논설위원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