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정보기술(IT) 관련 인력 부족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세계 IT산업을 선도하는 미국이 IT 기술인력의 부족을 해소키 위해 정부 차원에서 인력의 외국 수입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력 수입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쪽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 정부의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H1-B」라는 특수 비자를 발급, 해외 기술인력의 미국행을 장려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의 이러한 사례는 장차 IT 인력부족 사태에 직면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 타산지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 월드리포트는 IT분야 시장조사 및 컨설팅 제공업체 RHK(Ryan Hankin Kent, http://www.rhk.com)가 최근 내놓은 「미국의 IT 인력부족과 대책」에 관한 보고서를 소개한다.◆
◇ 미국의 IT 인력난 현황과 대책 =미국의 「노동통계부(Department of Labor Statistics)」는 오는 2008년까지 통신 관련 전문인력이 8.5% 증가해 약 32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결국 IT분야에서 숙련 기술자의 수가 1년에 단 2%의 비율로 증가한다는 의미로 필요한 수요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또 미 상무부는 내년에 필요한 IT인력을 14만명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대학에서 배출되는 관련 졸업자는 4만5000명에 불과하다는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심각한 기술 인력난으로 인식한 미 정부는 지난달 빌 클린턴 대통령이 외국의 숙련 기술자들의 미국 수입을 늘리는 새로운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기술자 보충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대통령이 서명한 법안은 미국으로 이주하는 외국의 숙련된 기술자들에게 「H1-B」라는 특수 비자를 발급해 매년 8만명 정도의 기술자를 유치한다는 내용을 골
자로 하고 있다. 미 정부는 기술력을 지닌 이민자를 유입함으로써 올해와 내년, 내후년까지 3년간 총 19만5000명의 IT인력을 확보할 방침이다.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특히 H1-B 비자를 통한 기술자 유입을 절실히 원하고 있었던 통신 관련 시장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비췄다. 현재 미국 통신산업의 생산성은 1년 만에 4%로 2배 증가했지만 인력은 최근 단 1%만 증가하는 등 심각한 인력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그러나 이번 법안 결정으로 통신산업의 기술 인력부족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H1-B 비자발급으로 향후 3년간 숙련 기술자의 미국 이민이 증가하면 현재 고민중인 「통신 전문가 수급 불균형 문제」 역시 상당부분 해소될 전망이다. 또 통신산업의 사업모델이 최근 노동 집약형에서 자본 집약형으로 변화됨에 따른 인력 감소가 IT 인력 수요 완화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편 미 정부가 발행하는 H1-B 비자는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는 비자는 아니지만 이 비자를 발급받고 일하러 오는 사람들 가운데 3분의 2 정도는 「지위 변경」을 신청하고 미국 시민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1-B 비자를 보유한 기술자들은 「이중 의도」라는 관행에 따라 임시고용 비자와 연관해 영구 거주를 신청할 수 있게 된다. 영구 거주 신청 전에 H1-B 비자가 만료되지 않는 한 기술자들은 자신들의 국적지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 이민 기술인력의 후원 =미 정부는 H1-B 비자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자를 고용
하고자 하는 고용주는 기술자의 후원자가 되어야 할 것으로 지적했다. 이민자들을 고용할 고용주들은 자국민의 고용계약서와 유사한 형식으로 고용과 보수에 대한 조건을 지정한 신청서를 노동부에 제출하고 이후 H1-B 비자 기술자에 대해 1000달러의 신청료를 지불하고 기술자를 고용하겠다는 청원서를 이민귀화국에 제출해야 한다.
외국 기술자에게 부여되는 H1-B 비자의 유효기간은 3년이며 1회 연장도 가능하다. 외국인이 H1-B 비자를 보유할 수 있는 최장기간은 6년이며 이 기간이 만료되면 H1-B 기술자는 고국에 귀국해서 최소 1년이 지나야 H1-B 지위를 다시 받을 수 있다. 물론 기술자가 미국 국민이 되기를 희망한다면 그전에 「지위 변경」 신청을 하면 된다.
그러나 이 비자 시스템은 사회의 전반적 찬성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 통
신기술자협회(Communication Workers of America)에 가입해 있는 74만명의 통신기술자들은 H1-B 비자에 반대하고 있다. 특히 이 협회의 회장인 모튼 바(Morton Bahr)는 『현재 미국은 기술이 부족한 것이지 기술자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며 『지난날 시스코시스템스가 미군 제대병을 상대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해 취업자를 뽑은 것과 같은 내국인 기술자들을 교육시켜 활용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협회의 산하 단체인 「AFL-CIO」 또한 정부의 인력 해소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AFL-CIO는 새로운 이민법이 발효되면 외국기술자들은 노예와 같은 종속상태에 놓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고용주가 이민 기술자에게 고용관계가 끝났다고 통보할 경우, 기술자가 H1-B 비자의 후원을 제공하겠다는 청원서를 제출할 새 고용주를 찾지 못한다면 즉시 미국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AFL-CIO의 지적이다.
◇ 기술인력 수요의 지속적 증가 =수요 측면에서 볼 때, 일부 대형 통신회사들이 몇몇 분야에서 채용을 줄이고 있지만 업계 내부의 총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AT&T와 퀘스트(Qwest)는 음성기반 기술 분야에서 종업원을 정리 해고할 예정이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인력을 충원할 계획이다. AT&T는 올해 9월까지 사업부, 고객 통신부 등에서 각각 2400명, 4600명을 정리 해고할 계획이지만 종업원 총수는 11% 늘어나 16만30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이 채용되는 종업원들 대부분은 무선, 광대역, 인터넷 기술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될 전망이다.
퀘스트는 US.West의 인수 때문에 내년에 1만1000명을 정리 해고할 계획이지만 서비스 강화를 위해 7월 1일 이후 300명의 종업원을 신규로 고용할 계획이다.
또 신규 지역전화사업자(CLEC)처럼 소규모 통신업체에서는 기술인력 부족 현상이 커질 전망이다.
이러한 인력난은 하이테크리크루트업체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점쳐진다. 캘리포니아주의 샌 머테이오에 있는 온라인 리크루트업체인 브래스링(Brass Ring)은 『비어있는 일자리는 6만개나 있으나 이력서는 단 400장 밖에 받지 못했다』며 울상이다. 브래스링은 사업 개시후 5년이 지났지만 이렇게 극심한 인력난이 발생한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인력난으로 인한 스카우트 경쟁도 치열하다. 많은 고급 인력들이 이력서를 제출하기도 전에 다른 회사들에 스카우트되고 있다. 매사추세츠주 프래밍햄에 있는 통신 담당자 및 간부급 인력 소개업체인 프래클린인터내셔널서치(Franklin International Search)의 스탠 쉰들러 사장은 『인력 스카우트가 일상적인 행위가 되었으며 다른 직장의 인력을 채가는 일도 빈번하다』고 밝혔다. 특히 리쿠르트 업종에 22년의 경험을 갖고 있는 쉰들러도 현재 미국을 휩쓸고 있는 통신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는 『전무후무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리=명승욱기자 swmay@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