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물로 전락한 중기 DB실태

『모두가 죽어 있는 정보입니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여기저기 구축해 놓았지만, 실제 사용자 입장에선 쓸 만한 게 없습니다.』

내년초 상용서비스를 앞둔 한 e마켓플레이스의 시스템 기획자가 열악한 중소기업 DB실태를 보고 토로한 말이다.

기업규모를 막론하고 이제는 e비즈니스와 기업간(B2B) 전자상거래(EC)가 새로운 생존대안인 상황에서 중소기업들은 사실상 「얼굴」도 못 내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동안 중소기업청·중소기업진흥공단·한국전력·산업기술정보원·신용보증기금·대한상공회의소 등 정부 유관기관들이 중소기업 DB를 앞다퉈 구축했지만, 정보사용자 시각에서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현재 남발적으로 구축된 중소기업 DB 현황과 문제점, 보완책 등을 짚어본다.

◇ 현황 =기업DB는 상품정보와 함께 EC환경 구축을 위한 가장 필수적인 지식자원이다. 일개 DB에 불과하지만 거래당사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라는 점에서, 중소기업들이 EC에 참여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인 셈이다. 그만큼 중요성도 크다.

이에 따라 산업자원부·중기청 등 유관부처에서는 이미 수년전부터 중소기업 DB를 구축, 인터넷·PC통신 등으로 서비스를 제공중이다. 중소청의 「중소기업체현황 종합관리시스템」 「벤처넷」, 대한상공회의소의 「전국기업체총람」,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중소기업정보은행」, 한국전력의 「산업정보망」, 신용보증기금의 「중소기업광장」 등이 그것이다. 이전 산자부 산하기관인 산업기술정보원은 「이노넷」과 함께 「산업기술 지역정보」라는 지역별 중소기업 DB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 문제점 =부실한 중소기업DB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주소·연락처·생산품목 등 극히 일반적인 기업정보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마저도 DB구축 당시의 현황이 제대로 갱신되지 않고 있다. 일례로 산업기술정보원 지역정보의 경우 총 5만개에 달하는 기업체 정보를 수록하고 있지만, 정보서비스 이용자들에게는 거꾸로 「양」으로 승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당장 예상되는 부작용은 중소기업들이 e마켓플레이스 등 B2B EC의 거래주체로 참여하는 데 오히려 장벽이 된다는 점이다.

모 협회 관계자는 『중소기업과 거래를 희망하는 이용자들은 해당 기업의 사업내용에 대해 최신 세부정보를 원하지만 현재 대다수 DB들이 이를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영문서비스가 안되는 점도 중소기업의 「사이버무역」을 공허한 구호에 머물게 하고 있다. 실제로 중기공단을 제외하면 나머지 DB들은 대부분 한글 텍스트 수준에서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주요 기관들의 DB가 XML로 구축되지 않아 정보공유를 위한 데이터 전환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현재 e마켓플레이스를 구축중인 주요 사이트들이 일일이 기업 DB를 재구축하거나 하는 수 없이 이들 DB를 가져다 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기공단 정영현 팀장은 『1년에 한번씩 중소기업 정보를 갱신하고 있지만 연간 변동되는 내용이 전체의 20% 정도에 달할 정도로 작업이 방대하다』면서 『정보 확충과 갱신이 제대로 안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인력 등 관리능력의 한계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또 『대체로 한개 기관이 DB를 먼저 구축하면 다른 곳은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면서 이와 함께 『해당 중소기업들이 자세한 정보공개를 꺼리는 이유도 있다』고 덧붙였다.

산업기술정보원 이노넷 신기정 팀장은 『정보이용자들에게 신뢰를 잃고 있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중복·난립하고 있는 DB들간의 통합연계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며 『중기청·산자부 등 정책당국도 구축만 하고 나면 유지·보수에는 지원을 끊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 해결책은 없나 =정부 산하·유관기관들이 운영주체인 만큼 정책당국이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기정 팀장은 『정부는 기관간의 역할분담과 서비스차별화, 유지보수에 예산지원 등 보다 적극적인 개선노력을 보일 필요가 있다』면서 『사용자들에게 유용한 DB가 되기 위해서는 정책입안자들의 인식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중소기업 정책관련 원천정보가 집중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중기청의 안일한 태도가 비판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간기업이 중소기업 DB를 생산·개발하고 정부가 구매, 서비스하는 방식도 대안으로 제출되고 있다. 한국기업정보 내창엽 사장은 『미국 관세청의 경우 민간기업에 사업권을 준뒤 운영을 대행하는 식으로 질적 수준을 확보하고 있다』면서 『DB운영자의 책임을 확실히 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