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코리아 서주철 회장 구설수

「자금유용이다.」 「아니다.」

자신이 운영해오던 자본금 10억원짜리 회사를 지난해 벨기에 음성인식 전문업체인 L&H에 60배에 달하는 5000만달러에 매각하면서 화제가 됐던 서주철 회장이 자금유용 구설수에 오르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벨기에의 벤처캐피털업체인 FLV(Flanders Language Valley Fund)는 최근 L&H코리아의 최고경영책임자(CEO)인 서주철 회장을 자금유용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FLV 대변인은 서 회장이 FLV 본사의 승인을 받지 않고 FLV 자본금 3000만달러를 한빛은행에 담보로 제공하고 거액을 대출, 사적인 용도로 전용했으며 또 대출 목적도 분명치 않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서 회장 측은 『이는 사실과 다르고 책임을 자신에게 전가한 것』이라며 완강하게 맞서고 있다.

외관상으로 본다면 서 회장이 FLV 자금을 담보로 은행에서 3000만달러를 대출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L&H가 대주주로 있는 FLV는 창업투자회사로 세계 각국에 지사를 설립하기 위해 지난 6월 증자를 실시하면서 당초 예상했던 증자금액보다 3000만달러가 부족하자 서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L&H코리아 오상기 재무본부장에 따르면 FLV의 CEO인 필립 버뮬란은 당시 L&H 본사 회장단과 함께 한국을 방문, 서 회장에게 FLV 한국지사 설립에 필요한 자본금 3000만달러를 금융권에서 조성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조건은 3000만달러를 대출해주면 열흘 뒤 한국지사를 설립한 후 그 자본금 전액을 담보로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서 회장 측은 주거래 은행인 한빛은행에서 FLV가 제시한 담보 조건으로 3000만달러를 대출, 그 돈으로 열흘 후 FLV 한국지사가 설립됐고 FLV의 자본금은 은행담보로 제공됐다.

문제의 발단은 이달 들어 산동회계법인이 FLV 한국지사를 회계감사하는 과정에서 자본금이 은행담보로 잡혀 있는 것이 드러났고 이 사실이 FLV 본사 이사회에 통보되면서 비롯됐다.

당시 필립 버뮬란 사장은 한국지사를 설립하면서 자본금 조성에 관한 대출방식이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사회 승인을 받지 못했다. 결국 이사회는 승인절차 없이 자본금이 담보제공된 이유를 버뮬란 사장에게 물었고 『버뮬란 사장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은 모르는 일이며 서 회장이 저지른 일이라고 발뺌하고 있다는 것』이 서 회장 측의 주장이다.

궁지에 몰린 서 회장은 당시의 상황을 알고 있는 L&H 본사에 정황 설명을 요청했지만 L&H는 기업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 함구하고 있다. 더욱이 희생양으로 몰린 서 회장은 퇴진 요구를 받고 있다.

자금유용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서 회장은 당시 주고받았던 전자우편 등의 증거를 토대로 사실공개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건의 전말이 공개될 경우 버뮬란 사장은 물론 FLV의 대주주사이면서 나스닥 상장기업인 L&H가 입게 될 타격이 적잖을 것이라는 게 서 회장 측 주장이어서 「사실공개」와 「지사장 직위 유지」 등의 문제를 두고 어떤 절충안이 제시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