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벤처 새틀을 짜자>(9)시장에 맡기자

미국이 수십년에 걸쳐 이룩했던 벤처붐을 우리나라가 단 몇년에 조성할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 국란이라는 IMF 경제위기의 터널을 어느 정도 빠져나왔다는 나라 안팎의 평가를 받아왔다. 한때는 미국과 이스라엘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번째로 벤처문화가 발달한 나라로 평가됐으며 경제대국 일본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문제는 철저한 정부주도의 벤처정책이 곳곳에서 후유증을 양산하고 있다는 사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벤처기업 확인제도다. 물론 벤처기업특별법에 따라 「벤처캐피털투자기업」 「연구개발(R &D)투자기업」 「특허 등 신기술 사업화기업」 「신기술 평가기업」 등 4개 부문으로 나눠 정부가 공인하는 법상 벤처기업은 이미 8000개가 넘을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벤처기업 확인을 받는 업체에 대해 세제지원, 자금지원, 코스닥등록시 우대 등 전폭적인 지원을 쏟아부면서 이로 인한 후유증은 예상 외로 심각하다. 벤처의 기본인 모험정신이나 신기술과는 무관한 기업들이 창투사로부터 지분을 받았다는 이유로 간단하게 벤처로 「둔갑」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직전연도의 매출 중 특허기술에 의한 비중을 50%로 높이기 위한 매출 부풀리기 현상도 적지 않다.

반면 벤처정신으로 무장된 신생벤처들은 갈 곳이 없다. 상당수 업체들이 실적부족으로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으면 되지만 벤처금융시장이 냉각, 이마저도 여의치가 않다. 온·오프라인을 연계한 인터넷사업을 추진중인 N사의 L전무는 『벤처투자 패턴이 제조업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기성 중소기업들은 벤처로 혜택을 받고 있는데 인터넷이나 소프트웨어업체들은 벤처확인이 까다로워 투자가와 정부로부터도 이중으로 소외받고 있다』고 푸념했다.

벤처지원 정책에 대해 정부부처들이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주무부처인 산자부와 중기청을 비롯해 재경부·정통부·과기부·복지부·건교부·환경부 등 벤처관련 정책부처가 분산돼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평이다. 특히 실질적인 벤처정책부처인 중기청이 「청」의 한계를 드러내며 각종 정책입안 과정에서도 별로 힘을 싣지 못하는 실정이다.

비단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벤처캐피털 관련 정책부서도 현재 창투사는 중기청으로 신기술금융사는 재경부로 이원화된 상태다. 때문에 벤처캐피털에 대한 정부의 사후관리나 감사에서 창투사만이 집중대상이 되고 있는 상태다. 이에 따라 코스닥등록 후 일정기간 투자기업의 지분매각을 제한하는 록업(lock-up)시스템의 적용시 재경부 라인인 은행·투신·종금 등 금융기관은 제외된 상태다.

벤처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지원은 많은 소외계층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결국에는 규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지나친 지원중심의 현 벤처정책은 과거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나 「수입선다변화정책」 같은 중소기업정책이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난 것처럼 벤처의 체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벤처네트워크그룹 배재광 사장은 『벤처는 매우 자율성이 강한 비즈니스다. 정부의 지원은 기업들이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는 기반, 즉 인프라 구축에 주력해야 한다. 나머지는 시장에 자연스럽게 맡겨야 벤처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