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벤처 새틀을 짜자>(10·끝)이제 다시 시작이다

정현준게이트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MCI코리아 진승현사건이 또다시 벤처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정씨 사건으로 벤처에 대한 신뢰가 땅으로 떨어져 벤처자금 이탈이 가속화되고 벤처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면서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벤처업계로서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외신들도 최근 『한국이 구조조정의 실패로 지난 97년 IMF 관리체제 출범 이전과 매우 유사한 상황으로 흐르고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벤처업계는 그러나 이같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벤처와는 무관한 일임을 강조한다. 「벤처인이 아니라 사이비벤처인에 의한 사기사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엄연히 「벤처」가 이 사건의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점과 앞으로도 이같은 사건이 또 터질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벤처든 사이비벤처든 이같은 부류의 사건은 벤처산업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왜 벤처업계에 이같은 비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느냐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이유는 우리 벤처인들이 삼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즉, IMF 경제위기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정부의 과감한 벤처지원정책으로 벤처붐이 최고조에 달함으로써 「이제 더이상 IMF는 없다」라고 판단, 지나치게 낙관했으며 매사에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시중의 자금이 벤처로 집중됐으며 벤처업계에 돈이 넘쳐흘러 많은 벤처인들이 서울 강남의 고급 룸살롱을 휘저으며 흥청망청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벼랑끝 위기에 몰렸던 우리 경제가 벤처를 매개체로 빠르게 호전되면서 IMF 이후 2년도 채 안돼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창출했다고 너무 자위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소위 선진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유학파」들과 한국 주식시장의 허점을 간파한 20∼30대 금융인들이 엄청난 거금을 손에 쥐었으며 「한탕주의」와 「대박주의」가 판을 치고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가 극에 달했던 것이다.

한가지 위안을 삼을 만한 것은 정현준게이트와 같은 사건을 통해 곪을대로 곪은 우리 벤처산업의 고름이 이제는 터져서 치유를 더욱 쉽게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최근 일련의 벤처사건이 지금 당장에는 벤처업계의 위기를 가속화하는 악재 중의 악재』라면서도 『하지만 이들 사건이 결국은 취약한 우리 벤처산업의 대수술로 이어져 제2의 도약을 하는 데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정부, 벤처기업, 벤처인프라업계 등 관련기관과 업계는 물론이고 우리 국민 모두가 다시 한번 허리끈을 졸라매고 한국의 벤처를 다시 세운다는 자세로 재무장을 해야 한다. 특히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벤처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모두가 합심,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벤처 비즈니스 모델을 정립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선진국의 벤처모델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만으로는 더이상 한국경제를 벤처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절감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벤처가 우리 경제의 번영을 책임질 만한 확실한 대안이며, 지금부터라도 하나하나 잘못된 부분을 고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면 「벤처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거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우리 벤처의 곪은 부분들은 가급적이면 빨리 확실하게 도려내고 하루 빨리 새살이 돋을 수 있도록 흩어진 여론을 한데 모으는 과정을 선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벤처는 이제 출발선에 다시 서 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