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엔터테인]2000 가요계 결산

보이밴드를 위시한 틴에이저가 주도한 해외 팝계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밀레니엄 가요계도 수년간 주류를 장악해온 10대 중심의 「댄스와 발라드」 체제가 흔들림이 없었던 한해였다. 뉴 밀레니엄이란 말이 무색하게도 90년대와 조금도 변함없이 너도나도 댄스와 발라드를 들고 나오는 「춤과 이미지」 무한경쟁이 일년 내내 계속됐다.

모든 신인들이 나와서 화려한 동선을 보여주기에 바빴을 만큼 댄스음악은 무소불위의 파워를 과시했다. 최대의 수혜자는 록에서 댄스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 홍경민이었고 발라드 슈퍼스타 조성모도 본격 댄스곡 「다짐」을 선보일 정도였다. 조성모는 200만장에 가까운 앨범 판매와 더불어 「아시나요」 뮤직비디오로 백마부대와 갈등하는 등 인기와 화제 모든 측면에서 올 최고가수로 손색이 없을 만큼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다. 조성모 독주 속에 조장혁·임재범도 오랜 인기를 누리며 댄스 못지않은 발라드의 힘을 보여주었다.

한번도 왕관을 써보지 못한 록은 노바소닉·서문탁·박완규 등이 도약의 깃발을 쳐들었으나 댄스와 발라드 시장을 제압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록은 하반기 서태지 강풍에 힘입어 일단 가능성을 열어놓는 데는 성공했다. 올해 최대 뉴스는 단연 서태지의 컴백이었다. 음반이 나오기도 전에 전 신문과 방송이 음악의 정체와 파급효과를 놓고 야단법석을 피워댔으며 가요계 전체가 술렁이는 일대 소동이 야기됐다.

추석을 앞두고 공개된 그의 「울트라맨이야」는 비록 판매량으로 격돌한 조성모를 추월하지는 못했으나 100만이라는 열혈신도(?)를 재확인한 동시에 생소한 하드코어로 인디를 비롯한 록계열 음반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닥터코어 911·노 브레인·디아블로 같은 언더그라운드 록밴드들이 잇따라 사람들 입에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때 기세가 서태지 못지않았던 신승훈은 4곡의 뮤직비디오를 만들며 선전했지만 작년의 김건모와 마찬가지로 100만장의 깃대를 다시 꽂는 데는 실패했다. 멤버들이 직접 곡을 쓰면서 아티스트 반열에 오르기 위한 시동을 건 HOT도 하반기 최대의 복병 「가을동화」 앨범과 경쟁자들의 신보와 맞물려 현재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있다. 그들의 라이벌인 젝키는 올해 해산의 비운을 맞았다. 반면 TV의 육아일기 프로그램으로 이미지를 잘 구축한 지오디(god)는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로 기분좋은 한해를 보냈으며 출시한지 얼마 안된 「거짓말」도 반응이 폭발, 슈퍼스타 판도의 변화를 예고했다.

여가수들의 활약도 두드러진 한해였다. 이정현·김정현·박정현·제이(J)·박지윤 그리고 엄정화와 핑클 등 많은 여가수들이 분전을 거듭하며 음반시장을 호령했다. 특히 이정현은 「바꿔」로 총선시점에 인기절정에 올랐고 하반기에는 「성인식」의 박지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톱스타가 되기도 전에 앤티사이트가 출현한 보아 같은 신인들의 행보도 만만치 않았다.

자기 색깔을 갖고 꾸준히 팬을 유지한 스타로는 이승환·윤상·이상은 그리고 여름을 뜨겁게 달구며 힙합의 도약을 주도한 악동들 DJ DOC가 있다. 과거의 명곡들을 리메이크한 윤도현밴드와 자우림은 록 분야에서 나름의 위치를 굳혔다. 신인 가운데는 여성 연주그룹 지젤, 한일합작 팀인 테라, 힙합과 록을 뒤섞은 퍼니 파우더 그리고 힙합의 신성 씨비 매스(CB Mass)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수작앨범이 빈곤했던 한해였으며 임현정·롤러코스터·한충완 등의 앨범은 그 우수성에 상응하는 환대를 받지 못했다.

트로트와 포크 등 성인음악은 여전히 부진했다. 하반기에 조용필·들국화, 송창식·양희은·윤형주·김세환의 포크 4인방이 공연으로 기지개를 켰지만 음반으로 지지를 확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의 태진아, 「좋아 좋아」의 현숙, 테크노트로트로 바람을 일으킨 이박사가 고군분투했지만 트로트도 침체에서 벗어날 기미가 없었다.

TV에서 가수가 노래하는 모습보다 토크와 코미디하는 광경을 더 많이 봐야 했던 한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개그맨들의 잇따른 가수부업 선언도 가요계 뉴스를 장식했지만 시장에서는 대부분 외면을 당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웃기는 가수들은 인기를 끌어 컨츄리 꼬꼬나 캔 등은 코믹성의 이득을 만끽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 jjinm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