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자는 반도체, 통신, 액정표시장치(LCD) 등 첨단 사업군을 갖고 있으면서도 디지털 기업의 이미지를 심지 못했다. 건설과 조선 등의 전통산업의 현대 이미지가 워낙 강하게 투영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대전자의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인물이 바로 박종섭 대표이사 사장(53)이다.
지난 4월 취임한 후 그의 첫 일성은 디지털 경영이었다.
우선 업무 프로세스를 선진 경영에 맞게 뜯어고치기 시작했으며 관련 정보시스템도 서둘러 구축토록 했다. 복장자율화, 연구위원제 등 벤처기업을 방불케 하는 제도도 도입했다.
박 사장의 디지털 경영이 돋보이는 것은 현대와의 관계에 대한 줏대있는 태도다. 박 사장은 관계사에 대한 무분별한 지원을 단호히 거절했다. 지난주에는 계열 분리와 관련해 박 사장은 『국내 회사로는 처음 이사회 중심의 선진국형 주주경영회사로 전환하겠다』라고 선언했다.
박 사장의 디지털 경영은 맥스터 등 해외 자회사의 운영 등을 통해 습득한 선진 경영기법에서 비롯됐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취임하자마자 해외 출신 재무 및 IT전문가를 대거 영입한 것도 현대전자를 선진형 경영구조로 바꿔 가겠다는 의지다.
박상호 세미·LCD사업부문 대표 사장(53) 역시 오랜 해외기업 근무에서 몸에 밴 선진 경영으로 현대전자를 디지털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지난해 현대전자에 합류한 박상호 사장은 격식을 따지지 않는 회의 등으로 사내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박종섭 사장이 재경통이라면 박상호 사장은 미국의 대형PC업체에서 닦은 마케팅통으로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다.
박상호 사장은 『오프라인이 강하지 않고서는 e비즈니스도 의미가 없다』라면서 『현대전자의 사업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과 선진 e비즈니스의 도입을 병행해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두 사장들이 현대전자의 디지털 경영 전도사라 한다면 현재문 전무 겸 최고정보경영자(CIO, 56)는 이를 뒷받침하는 실무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미국 컨설팅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에서 근무하다 박종섭 사장에 의해 현대전자에 스카우트됐다. 「글로벌현금관리시스템」은 그가 현대전자에 와서 만든 첫 작품. 해외법인의 현금 흐름을 수시로 점검해 미래 흐름까지 예측하는 시스템이다.
이후 전자구매시스템, PDM, ERP를 구축했으며 앞으로 공급망관리(SCM), 고객관계관리(CRM) 등도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현 전무는 현대전자의 e비즈니스전략과 관련해 『기업 체질을 강화하기 위한 마스터플랜을 짜고 있다』라면서 『e비즈니스를 단순히 비용 절감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신규 사업기회 발굴과 고객, 주주의 가치를 높이는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진의 강력한 후원과 CIO 이하 실무진의 치밀한 접근으로 현대전자가 새로운 디지털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