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iz-디지털파워 세상을 바꾼다]75회-현대전자

현대전자는 그룹으로부터의 계열 조기 분리를 계기로 명실상부한 독자 경영의 길에 접어들었다. 특히 올들어 적극 추진하는 디지털 경영도 더욱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계열 분리로 「앞뒤 재지 않은 그룹 관계사 지원」 「총수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 「무분별한 사업 확장」 등 아날로그적 경영의 고리를 끊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관계사와 내부 유동성 위기로 빛이 바래졌으나 올들어 이 회사가 디지털경영 환경에 발맞춘 혁신작업은 사실 놀라웠다. 앞장서 사외이사제를 도입하는가 하면 연공서열제 폐지, 연봉제 확대, 근무복 자율화와 같은 파격적인 조치가 잇따랐다. 전장사업, 플라즈마디스플레이(PDP),모니터 등의 사업부는 물론 스코틀랜드 공장 등 자산까지 과감한 분사와 매각을 단행했다.

일련의 조치가 권위적인 현대그룹의 이미지에 걸맞지 않아 『과연 이 회사가 현대 계열사 맞아』라고 의심케 만들 정도였다.

유동성 위기가 현대전자의 독립 경영에 촉매제 구실을 하기도 했으나 이미 이전부터 그러한 시도가 있었다. 바로 디지털 경영이다.

현대전자의 디지털 경영은 다양한 정보시스템의 도입으로 나타났다.

올들어 이 회사는 글로벌자금관리시스템, 제품개발관리(PDM), 전자구매시스템, 전사적자원관리(ERP) 등의 정보시스템을 잇따라 구축, 가동했다. 현대전자가 이같은 정보시스템을 단순한 업무 전산화 수준을 넘어 기업 체질을 아예 바꾸는 도구로 쓰려 한 게 두드러진 특징이다.

현대전자는 지난 7월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의 협조를 받아 글로벌현금관리시스템의 경우 국내외 생산 및 판매법인의 자금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박종섭 사장은 현금 흐름에 대한 관리를 최고로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평소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경쟁력을 높이고 투자도 받기 위해서는 선진기업처럼 현금 흐름 중심의 경영에 익숙해져야 한다』라고 말해 왔다.

현대전자는 글로벌현금관리스템의 구축으로 현금위주의 경영을 구현하고 재무관리를 더욱 과학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또 회계 재무 처리 과정을 수시로 분석할 수 있어 「분식결산」과 같는 눈속임이 불가능해져 경영의 투명성을 높였다.

현대전자는 외환거래법 등의 개정 방향에 따라 본사에도 글로벌현금관리시스템을 단계적으로 적용하고 앞으로 차입금과 외환 상황을 망라한 통합 재무 관리를 시행해나갈 방침이다.

글로벌현금조달시스템이 내부적인 체질 개선이라면 전자구매조달시스템은 사내외간 e비즈니스를 위한 첫 단추다.

현대전자는 각 사업부서의 구매 신청에서 최종 구매실적 분석까지 가능한 전자구매조달시스템을 8월부터 본격 가동했다.

이 회사의 구매조달시스템은 △청구 자동화 △견적 자동화 및 협력업체 부가가치통신망(VAN) 확장 △구매실적분석자동화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청구자동화는 실구매자가 해당 부서로부터 결재를 받기만 해도 해당 구매 담장자에게 자동 전달하도록 돼 있다. 견적 자동화는 견적 의뢰에서부터 업체선정, 발주업무까지 모두 전산화됐다.

이를 통해 현대전자는 재고물량의 운용 및 구매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물론 구매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달 현대전자는 ERP시스템인 「SAP R/3」을 가동해 회계, 자금, 구매 등의 업무를 통합 관리하고 실시간 경영정보를 공유해 신속한 의사결정과 투명 경영의 기반을 다졌다.

140억원을 투입해 이 시스템은 본사 반도체 부문과 경영지원부문에 구축됐으며 앞으로 다른 부문으로도 확대돼 e비즈니스에 대한 인프라 구실을 하게 된다.

현대전자는 또 연구개발분야에서는 제품개발관리(PDM)를, 협력업체에 대해서는 공급망관리(SCM)시스템을 구축하고 고객과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고객관계관리(CRM)도 구축중이다.

e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내부 역량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시스템만 갖춘다고 저절로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박종섭 사장은 지난 3월 사장에 취임하면서 해외파 인사를 잇따라 영입했다. 현대전자의 최고정보경영자(CIO)로 e비즈니스를 진두지휘하는 현재문 전무(CIO)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백마디 이론보다 글로벌한 현장 감각을 가진 지휘자를 통해 선진 경영시스템을 서둘러 배우기 위해서다. 아직 현대전자의 실험에 대해 성공 여부를 가리기는 어려우나 일단 변화하려는 모습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

현대전자는 지난달 10일 창립 17주년을 맞아 기업 슬로건을 기존의 「내일을 준비하는 오늘」에서 「휴먼&디지털」로 바꿨다.

디지털 기술을 선도하는 글로벌 리더의 위상을 표현하고 있으며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자 노력한다는 이념을 담고 있다.

이에 맞게 현대전자는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업무 분위기를 정착시켜 미래형 디지털환경에 걸맞은 디지털문화 기업으로 변신시킬 계획이다. 11월말 현대전자는 아날로그적 경영 때부터 누적됐던 고질적인 금융 부채로 좋은 영업 실적에도 불구, 몸살을 앓고 있다.

그렇지만 이 회사가 올들어 뿌린 디지털 경영의 싹은 몸을 추스르는 대로 큰 열매로 이어질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