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주권시대>하-해결과제

2002년 제조물책임법 시행은 소비자 주권시대를 여는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기·전자제품에 있어 소비자의 권리와 제조업체의 책임이 선진국 수준까지 높아질 수 있는 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소비자 피해 사실에 대한 증명을 소비자 개인이나 소비자단체가 해야 했던 것에서 제조·유통업체의 책임으로 전환되는 내용이다. 이에따라 소비자문제는 모든 부분에서 일대 전환을 겪게 될 전망이다.

최악의 경우 법률분쟁까지 가도 일단은 덮어두는 것이 유리했던 제조·유통업체 입장에서는 소비자 피해발생에 따른 책임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무조건 팔고 보자는 식의 유통업체도 소비자 피해에 대해 제조업체의 책임을 일정부분 떠맡아야 할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부당판매행위도 상당 부분 개선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법적 분쟁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속에 이미 소비자단체들은 외국의 판례와 소수지만 국내에서 벌어졌던 소비자 피해 관련 판결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인 평가를 내려줄 전문기관이 필요함에 따라 소보원과 소보원내 시험검사소의 역할에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제조업체 입장에서 규격화된 제품을 생산하지 않으면 소비자 피해에 대한 「책임없음」을 증명하기가 어려워 중소 제조업체의 규격화·정형화된 제품생산에도 상당 부분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난 7월 전기용품안전관리법이 강화되면서 향후 출시되는 전기제품의 안전기준이 국제적인 수준과 동일하게 된 점도 소비자 주권시대를 여는 의미있는 결과로 평가된다.

법제도의 정착과 동시에 또 하나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이 리콜제도의 활성화다.

소비자의 권리는 그 국가의 리콜제도가 얼마만큼 정착됐나를 보면 알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 국가의 경우 리콜은 늘 있는 일상적인 사례다. 물건을 구입한 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꾸는 것처럼 제품이 출시된 후 결함은 언제나 발견될 수 있고, 이에따른 교환이나 AS는 자연스런 사항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브리지스톤사처럼 결함발견 초기부터 곧바로 대응을 못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전자제품 리콜사례는 극히 드물다. 외국과 달리 리콜문제가 제기되면 마치 동종모델 전 제품을 폐기해야 하는 것처럼 소비자에게 인식돼 왔

기 때문이다.

정부의 소비자 보호정책과 소보원 및 각종 소비자단체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고 그 성과도 많았지만 국내 리콜제도의 정착 수준을 보면 아직 멀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는 리콜을 문제삼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리콜 이후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다. 100% 완벽한 제품이 있을 수 없다. 약점을 보완하고 결함을 보충하면서 제품과 인간은 성숙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선진국의 경우 리콜 이전이나 이후, 인체나 환경 등에 미치는 피해나 보상을 논하는 수준이라면 국내는 아직까지 리콜로 하느냐 마느냐를 얘기하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과거 LG전자나 삼성전자의 경우 냉장고 부품 교환이나 전화기와 관련해 부분적인 리콜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도 내부 고발자가 아니면 결함을 증명하고 리콜까지 이끌어 내기에는 불가능한 것이 국내 실정이다.

제조업체는 소비자의 민감한 반응을 문제삼는다. 소비자의 수준이 향상돼야 동시에 리콜제도도 활성화되지 않겠느냐는 반응이다. 그러나 제조업체 스스로 두려워하지 말고, 맞아야 할 매라면 당당하게 맞는 것이 리콜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향상시키는 길이라고 관계 전문가들은 말한다.

소비자 주권시대를 여는 것은 한 업체나 단체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향상된 수준은 제조업체나 소비자단체, 정부뿐 아니라 소비자 스스로도 바라고 있다.

그리고 향상된 소비자의 수준은 제조업체와 소비자단체, 정부 기관이 모두 노력해야 나올 수 있는 산물이다. 제조업체도 소비자가 될 수 있고 소비자단체, 관련 정부 기관도 결국 모두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소비자 주권시대의 개막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놓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소비자라는 생각이 기본에 깔리면 저절로 열릴 수 있는 문이다.

<임동식기자 dsl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