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재경부가 마련한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은 정부조달 전자화를 위한 「첫걸음」으로서 한껏 기대를 모았다. 조달업무 가운데 입찰부터 전자상거래(EC) 환경에 맞도록 개선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국가차원에서 EC를 확산시킨다는 취지였다.
연간 거래규모가 나라 살림살이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기업·정부간(B2G)시장은 사실상 기업간(B2B)거래만큼이나 중요한 부문이다. 이 때문에 전자입찰을 명문화하기로 한 이번 국가계약법 개정안은 관련업계나 전문가들로부터 시장활성화 및 전자정부 조기구축 차원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그러나 당초 기대와 달리 입법자체가 미뤄지고, 경매·역경매 등 정작 효과적인 입찰방식은 제외된 형태로 개정안 작업이 진행되면서 주변에서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자입찰 도입에 따른 실익이 적다는 판단 때문이다.
◇문제점 =국가계약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은 경매·역경매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정안은 입찰서 교환·변경 및 2회 이상 응찰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공기업 전자입찰 실무관계자는 『경매·역경매는 여러가지 일반입찰 방식 가운데 가장 큰 업무개선 효과와 비용절감을 가져올 수 있는 서비스』라며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경우 모든 정부기관과 공기업이 추진중인 전자입찰은 사실상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즉 국가계약법이 종전 방문 및 서류입찰 방식을 전자화할 수 있도록 근거는 마련했지만 업무절차는 여전히 오프라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국가계약법 개정작업이 현 안대로 처리될 경우 국가 전반의 EC환경에 미칠 악영향을 놓고 전문가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성균관대 정태명 교수는 『거대한 정부조달 규모와 참여기업의 범위를 고려할 때 향후 파급력이 더 큰 문제』라며 『특히 모든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조달까지 포함한다면 국가계약법 개정작업의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조달청외에 자체적인 전자입찰환경을 준비중인 정부부처들도 벌써부터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부처내 기업소모성자재(MRO) 온라인구매를 진행중인 정통부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굳이 경매·역경매서비스를 적용한다면 수의계약이 가능한 3000만원 이하 물품』이라며 『이 정도로 전자입찰의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우정사업본부의 경우 올해 온라인 구매로 집행할 수 있는 수의계약금액이 10억원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인터넷경매업체인 옥션의 MRO 구매서비스를 활용키로 한 산자부도 산하 기술표준원·광업등록사무소·마산수출관리소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지만 효과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개선책 =국가계약법 개정안이 현재 법제처 심사 계류상태인 만큼 온라인 거래환경에 맞게 경매·역경매를 소화하는 방향으로 신중히 재검토돼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전자조달 5대 선도공기업 가운데 한 기업체 관계자는 『경매·역경매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복수응찰과 입찰서 교환·변경 등을 허용해야 한다』면서 『전반적인 입찰질서를 흐릴 수 있다면 전자입찰에 한해서라도 이를 예외조항으로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경제와 EC라는 시대적 대세를 감안하면 적극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제출되고 있다. 한 법률전문가는 『미국의 경우 정부 조달업무 전반에 대해 전자조달을 의무화하고 있다』면서 『개정 국가계약법은 단지 권고수준에서 「전자입찰」만을 명문화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