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비뇨 저 「분류하기의 유혹<생각하기와 조직하기>」 중
『나는 무엇이고 누구란 말인가. 우리는 그것을 확실히 알지 못할 것이다 …. 언어들의 역사와 그것들의 일상적 기능은 「나」가 「너」를 요구하고 있으며, 「너」는 「나」가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게다가 유전학은 우리가 「우리」라는 것, 다시 말해서 종을 보존시켜주는 공동체의 배열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준다. 개인은 집단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이 아니고, 집단은 매순간 개인으로 요약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본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거울이고, 완전히 동시에 존재하지는 않는다. 이런 끊임없는 「해독」은 우리의 사회적 생활을 만들어내고 있다 …. 타자 덕택에, 나는 스스로를 경계선상에서 규정짓게 된다. 나는 구성하고, 표현하며, 상상하고, 범주화한다. 나를 범주화하기 위해서는, 그러므로 내가 타자를 범주화하는 것이 필요하고, 내가 참여하고, 나에게 영향을 주는 사회적 사고나 나의 사고의 어떤 「서랍」 안에서 타자를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식으로 동시에 타자로부터 자유롭기도 하고, 결코 자유롭지 못하기도 하며, 텔레비전이나 영화가 내게 영상을 가져다주는 유사한 것들로부터 자유롭기도 하고 자유롭지 못하기도 하다.』
메모: 저자는 분류하기가 최초의 생명체의 염색체로부터 우주적 요소들 사이에서 상호작용하는 사실의 계속적이고 복잡한 과정 속에서 생겨나는 본질적 의미화의 과정이라고 한다. 정보가 늘어만 가는 인터넷에서도 자료의 조직 즉 분류는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과 분류가 곧 의미화의 과정이라는 점, 무엇보다 나와 세계를 연결하는 접점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고은미기획조사부장 emk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