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의 악학궤변>올해의 마지막 히트 상품,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블랙&블루」

만약 서태지나 H.O.T 등을 폄하하는 글을 쓰거나 발언을 한다면 그 사람은 그들의 열혈팬에 의해 매장(?)될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항의전화나 e메일을 통한 반박문(또는 욕설), 심지어 구체적인 위협까지 포함한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이는 전투적인 10대 팬을 거느린 스타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그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팝 뮤지션은 누가 있을까. 리키 마틴 아니면 머라이어 캐리나 림프 비즈킷, 또는 메탈리카. 그럴 듯 하지만 모두 아니다. 이들의 팬층은 상당히 두터운 편이지만 스타를 자신과 동일시 하거나 애인으로 삼고 심지어 부모라고까지 말하는 울트라 팬이 적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지나치게 섹시하거나 여자이거나 또는 과격하거나 하는 등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답은 아무런 결격사유가 없는 백스트리트 보이스(이하 BSB)를 꼽을 수 있다.

지난 93년 플로리다에서 AJ, 닉, 하위, 케빈, 브라이언 등으로 구성된 BSB는 90년대 초의 뉴 키즈 온 더 블록, 90년대 중반의 테이크 댓 등의 맥을 잇는 대표적인 매머드급 백인 보이 그룹이다. 이들이 등장한 이후 국내 팝 전문지에는 근황을 묻는 엽서가 연일 폭주하고 활동중단 기간에도 인기순위는 여전히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러니 그들의 기사나 사진이 실린 달과 그렇지 않은 달의 잡지 판매고는 현저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물론 오보나 비판적인 기사가 나갔을 경우 그 책임자는 비장한 각오(?)를 해야만 한다.

국내에서 이 정도니 미국의 상황은 불 보듯 뻔하다. 현재 이들의 3집(미국 발매 기준으로) 「블랙 & 블루」는 여러 기록을 경신하며 팝 음악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우선 지난 1, 2집에 이어 이번 3집도 무난히 다이아몬드 앨범(1000만장 이상 판매시)을 수상할 전망이다. 또한 선주문이 이전 최고 기록의 두 배에 달하는 700만장이 들어왔으며, 발매 첫주에 미국 내에서 160만장을 판매해 단숨에 플래티넘 앨범으로 등극했다. 첫 싱글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만 들어봐도 알 수 있지만 이들의 음악은 전작 대박앨범 「밀레니엄」의 연장선상에 있다. R&B풍의 보컬, 팝적인 멜로디,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인 편곡, 그리고 여기에 개개인의 외적인 매력이 더해져 그들을 최고 인기그룹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전작도 그랬지만 이번 「블랙 & 블루」 앨범도 매우 잘 만들어진 상품이다. 보통 음반에 상품이라는 표현을 쓰면 「포장은 잘 됐지만 내용은 별 것 없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BSB의 앨범에 한해서는 사전적 의미에 충실해야 한다. 맥스 마틴을 비롯, 현재 가장 잘 나가는 최고의 스태프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이번 앨범은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다. 또 고객에게 더없는 만족감을 안겨주는 그야말로 완벽한 상품이란 얘기다. 소비자보호원 같은 데 불만스러운 민원이 거의 접수되지 않는 그런 상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