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어머. 송혜교가 저렇게 촌스러울 때도 있었네.』
『미달이는 어렸을 때부터 정말 별난 아이였구나.』
한창 잘 나가는 스타들의 데뷔시절을 엿보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 변신의 폭이 클수록 재미는 더 커진다.
15일 692회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SBS 일일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의 「고별 스페셜」은 아기자기한 추억의 한자락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 지금은 어엿한 주연급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프로그램 초창기만 해도 앳된 신인티를 못 벗었던 많은 스타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98년 3월 첫 방영 이후 2년 10개월간 최고 인기 시트콤 자리를 뺏긴 적이 없는 「순풍 산부인과」는 이렇게 인기 연예인들을 배출해낸 스타 산실로도 손색이 없다.
드라마 「가을동화」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송혜교는 시트콤 출연 초기에는 말그대로 평범한 신인 연기자였다. 그녀는 극중 이 선생(이창훈)에게 속사포처럼 쉴새없이 수다를 떨면서 만인의 여동생이자 연인같은 귀여운 매력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제는 각종 인기투표에서 「첫눈 올때 데이트하고 싶은 여자 연예인」 1위로 꼽힐 정도로 「뜬」 그녀는 순풍산부인과를 통해 미리 오늘의 인기를 예약해 둔 셈.
빵이 없으면 못사는 「빵순이」 허영란 역시 비슷한 행운의 주인공이다. 오중이 오빠(권오중)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지만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주장을 거침없이 펼치는 그녀의 캐릭터는 신세대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시트콤에서 보여준 톡톡 튀는 개성 덕에 그녀는 쇼프로그램의 사회자나 VJ로의 변신에도 성공했다.
엽기적이기까지 한 당돌한 연기로 눈길을 끈 미달역의 박성은은 말 그대로 시트
콤과 함께 「자란」 아역 스타. 미달이말고도 의찬·정배·새미나 등은 「요즘 아이들」의 세태를 천진난만하게 소화해냄으로써 아이들은 물론 어른에 이르기까지 두꺼운 팬층을 확보했다.
사실 순풍을 거쳐간 연기자들 중 인기 상승을 경험하지 못한 스타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소연·이태란이 그랬고 김찬우·표인봉·권오중·장정희 등 모든 조연급 배우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색깔로 사랑을 받았으니까.
오지명과 박영규가 『어∼어∼, 용녀, 용녀』 『아, 진짜 장인어른 왜 그러세요』같은 제스처와 말투를 폭발적으로 유행시키면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한 것도 순풍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밤을 새우며 대본을 쓴 작가들이 각 연기자에 맞는 캐릭터를 창출해내 드라마에 녹아들게 한 것이 스타 발굴의 비결』이라는 김형욱 SBS 외주제작팀 PD는 시트콤 종영이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엘리베이터에 나비 넥타이 낀 사연, 그건 말로 못해. 지하철 문에 핸드백 끼고 달린 사연, 그것도 말로 못해... 태어나서 처음 본 세상,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일들...』
순풍 마니아라면 매일 저녁 9시 15분에 어김없이 들려오던 이 노래와 이 곳을 통해 새로 태어난 수많은 얼굴들을 오랫동안 그리워하지 않을까.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