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선 사이버국회 의장 hosun@sun.or.kr
지난 10일 노벨상 시상식이 열렸다. 매년 거행되는 시상식이지만 우리에겐 언제나 남의 집 잔치였다. 하지만 올해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 축제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됐다.
노벨상은 평화, 문학, 경제, 물리, 화학, 의학(생리) 분야에서 각각 인류에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하지만 노벨상은 단지 수상자 개인의 기쁨이라기보다는 국가적 영광이며 명예이고 자부심이다. 무엇보다도 자라나는 다음 세대들이 『우리나라도 노벨상을 탈 수 있구나, 나도 한번 도전해보자』라는 현실가능한 꿈과 희망을 갖게 된 듯해서 더없이 반갑고 다행스럽다.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상답게 상금 또한 우리 돈으로 약 11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뿐만이 아니다. 한 브랜드 가치 평가회사에 따르면 노벨 평화상으로 얻어지는 간접적 이익이 무려 3조원이 넘는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상금으로 주어지는 돈이 과연 어디에 쓰일 것인지 궁금하게 여기고 있다. 물론, 평화상의 취지에 맞게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분야에 쓰여져야 할 것이나 필자의 개인소견으로는 다음에 노벨 과학상을 받을 수 있도록 과학분야에 지원을 해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다.
노벨 과학상 수상지원재단을 만들어 지원금을 출연해주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노벨 평화상을 탔으니 이제는 노벨 과학상에 도전해보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과학영재들이 모이는 곳 중 하나인 포항공대에 가면 노벨 과학상 수상자의 흉상을 전시하기 위한 좌대를 볼 수 있다. 아직 수상자가 없으니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노벨 과학상은 물리·화학·의학 등 세 분야로 나뉘어 있다. 세 분야 모두 우리나라가 취약한 기초과학 분야다. 그동안 「당장 돈이 되는」 즉 산업적으로 응용될 만한 기술개발에만 역점을 두어온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반성해볼 일이다.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탄탄한 기초과학의 뒷받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통해 훌륭한 과학자를 길러내야 하지 않을까.
올림픽 경기 시즌이나 월드컵 경기를 치를 때를 생각해보자. 한 게임 한 게임 펼쳐질 때마다 국민들의 관심은 대단히 열성적이다. 경기에 대비해 대규모 경기장과 연습장을 짓는 데 많은 돈을 투자하기도 한다.
이제는 노벨상 수상을 위해서 그러한 지원과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필자는 지난 97년 동료 국회의원과 재계, 학계 인사들을 주축으로 사단법인 「노벨 과학상 수상 지원본부」를 만든 바 있다.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과학기술 석학 중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선정해 경제적, 정책적, 외교적 지원을 하는 일이 지원본부의 주된 역할이다. 우수한 영재를 발굴하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후원한다면 노벨 과학상 수상이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노벨상의 영예는 인류를 위한 노력과 고투가 세계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고귀한 순간이며 노벨상 수상은 한 나라의 과학기술과 과학문화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하다.
앞으로 세계는 기초과학을 발달시켜 원천기술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 세계시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경쟁력은 세계에서 28위에 머물고 있다. 늦어도 2010년까지 세계 5위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노벨 과학상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지원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흔히 노벨 과학상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독식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도 많은데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아시아권에서는 이미 일본·중국·대만에서 수상한 바 있으며 특히 일본의 경우 이미 지난 4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을 시작으로 올해도 스쿠바대학의 명예교수인 시라카와 히데키 교수가 노벨 화학상 부문에 공동수상자로 선정됐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 좋은 두뇌와 창조력을 갖춘 우리 민족이 아직 노벨 과학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하루 빨리 비어 있는 노벨 과학상 수상 좌대가 잃어버린 주인공을 찾을 수 있기를 고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자의 부단한 노력과 함께 국가의 지원과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