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 9월께였을 것이다. 왕즈둥(王志東) 스퉁리팡(四通利方) 사장은 한 대만 기업가와 마주 앉았다.
장펑녠 화위안(華淵)컨설팅 사장이다. 40대로 소프트웨어업계에서는 원로이나 끊임없은 모험심으로 대만은 물론 중국에서도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그가 시만텍, 맥아피같은 경쟁사들이 중화 백신 소프트웨어(SW)시장에 밀물처럼 들어올 때 역으로 그들의 안마당에 치고 들어간 것은 아직도 중화 젊은이들을 열광시킨다.
장펑녠이 왕즈둥을 만날 때에는 트랜드사를 박차고 나와 화위안사를 세워 중문 인터넷 사업을 한참 벌이고 있었다.
왕즈둥은 열살 위인 장펑녠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같이 최고의 중문 사이트를 만들어봅시다. 중국내 일은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장펑녠은 왕즈둥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다. 약관의 젊은 나이에 중국 최초의 중문 윈도 플랫폼을 만든 천재 아닌가. 그가 94년 발표한 인터넷용 중문프로그램인 리치원은 지금까지 나온 중문프로그램 가운데 최고로 손꼽힌다.
왕즈둥 역시 2년전인 96년부터 사업의 축을 SW에서 인터넷으로 옮겨가면서 중문 사이트인 SRSNet(利方在線 http://www.srsnet.com)을 운영하고 있다.
장펑녠은 평소 화위안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려면 반드시 회사를 중국에 둬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때마침 왕즈둥이 합작을 제의해오니 장펑녠은 솔깃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해 말 스퉁리팡과 화위안설팅은 전격적으로 합병했다. 중화 최대의 포털사이트 신랑망공사(新浪網公司 http://www.sina.com.cn)가 닻을 올린 것이다.
사실 두 회사의 합병은 모험이었다. 인프라도 형편없고 인터넷사업에 대해선 처음부터 끝까지 규제로 일관하는 중국내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도박이었다. 같은 민족이라 하나 어쨌든 나라도 다른 데 합작 사업이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왕즈둥과 장펑녠은 「세계 최고의 중문 사이트」를 만든다는 목표가 뚜렷했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에서 최고는 곧 세계 최고가 아닌가. 어려울수록 힘이 생기는 것 역시 두 사람의 공통점이었다.
막상 합병하려하자 전문가가 없었다. 왕즈둥과 장펑녠은 인터넷이 일상생활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인터넷 기술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의 머리에는 동시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샤쩡쯔라는 인터넷 전문가다. 오라클, 넷스케이프사를 거쳐 인터넷을 가장 많이 아는 중국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가 은퇴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왕즈둥과 장펑녠은 곧바로 그를 찾았다. 『샤선생. 이건 선생님처럼 돈도 명예도 충분한 분에게 그저 새로운 일자리인 것은 아닙니다. 중국 최대의 사이트를 만드는 사명의 자리입니다. 선생 외의 다른사람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런 이유도 달지 말고 이 자리를 맡아주십시요.』
샤쩡쯔는 사실 일에 진저리가 났다. 그동안 번 돈으로 자식들과 세계 여행이나 할까하던 차에 새로운 일이라니, 그것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일이 피곤하기만 했다. 멀리서 온 손님에게 미안했지만 거절했다.
그런데 왕즈둥과 장펑녠은 이 정도에 물러설 사람들이 아니었다.
샤쩡쯔의 입장이 확고하자 그의 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샤쩡쯔도 두손을 들었다. 은퇴를 잠시 미루기로 했다.
왕즈둥과 장펑녠은 샤쩡쯔를 영입하자 백만군마를 얻은 듯했다.
본격적인 인터넷 사업을 시작했다. 기술도 알고 경영능력도 있는 왕즈둥이 전반적인 경영을 맡았다. 장펑녠은 미국을 잘 아니 해외 벤처자금을 끌어들이는 일을 자임했다.
골드만삭스, 소프트뱅크, 델, 퍼시픽센추리 등에서 투자가 쇄도했는데 장펑니엔의 설득 덕분이었다. 투자규모는 3억5000만달러에 달했다.
지나닷컴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하루 페이지뷰만 500만. 660만인 야후 중문사이트에 약간 밀리지만 성장속도면에서는 야후를 압도하고 있다. 중국내로 한정하면 야후보다 훨씬 앞선다.
지나닷컴은 나스닥에도 진출했다. 아직은 중국의 인터넷 광고시장이 작아 매출도 적고 적자이나 이미 확고한 브랜드지명도를 쌓아 놓아 세계 일류의 인터넷 회사는 떼어 논 당상이다.
중국에 왕즈둥이 있다면 한국에는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32)이 있다.
두 사람은 한살차이의 나이, 인터넷 신화의 창조 등 공통점도 많지만 다른 점도 많다. 왕즈둥이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국내파라면 이재웅은 외국에서 직접 인터넷을 접한 해외파다.
80년대말 이미 인터넷의 힘을 아는 이재웅 사장은 프랑스 유학시절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한다. 그는 파리 국립과학연구소(ENS)라는 좋은 일자리를 놔두고 귀국해 회사를 차렸다.
일단 인트라넷 그룹웨어로 시작했다. 그렇지만 신통치 않았다. 워낙 경쟁이 치열했고 그룹웨서 시장의 끝물을 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웹메일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불과 3년이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국내 인터넷 벤처의 최고 스타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야후코리아도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최고의 인터넷회사로 컸다. 이재웅 개인도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국내외 언론에서 그는 세계적인 차세대 디지털리더로 손꼽는다.
거품이다 뭐다 하는 얘기가 여전하나 이재웅은 적어도 이것 하나만으로 그만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누구나 성공을 의심해 머뭇거렸던 웹메일서비스를 처음 시작한 것 말이다.
왕즈둥과 이재웅의 공통점은 불확실한 곳에 과감히 승부수를 던질 수 있는 배짱이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과 중국에 비해 일본의 인터넷 시장은 조용하다.
이렇다 할 대표선두도 없다. 기업가라기보다는 기업사냥꾼인 마사요시손 정도가 유명하다.
인터넷만 놓고 보면 일본이 전자대국인가 하는 의심이 생긴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것은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문명에 대한 일본의 대응이 낮았기 때문이다. 특히 전자호황이 지속되면서 일본은 세계의 변화에 둔감해졌다. 이는 일본은 고선명TV 개발을 선도하면서도 아날로그방식을 고집한 것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일본은 고속 통신망을 한국보다 먼저 깔기 시작했으면서도 제대로 이용할 수 있게 속도를 높이거나 이용요금을 낮추지 못했다.
일본인들의 보수성도 한몫을 했다.
언제부터인가 일본인들은 새로운 첨단기기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졌다. 낯선 웹사이트에 자신을 알리는 것도 일본인들의 성향과는 맞지 않았다.
반면 한국과 중국인들은 달랐다. 「냄비 근성」이라고 비하하는 것도 있지만 한국인들은 새로운 유행을 민감하게 좇았다. 이미 포화단계에 이른 휴대폰 보급률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일본인들은 아직도 세계 공통의 IBM 호환PC를 젖혀두고 NEC의 PC를 고집하고 있다.
그러면 일본은 인터넷의 후진국인가. 아니다. 오히려 잠재력은 한국과 중국을 훨씬 앞선다. 일반 사용자의 인터넷 열기는 이웃나라에 뒤질지 몰라도 기업의 인터넷 활용도면에서는 서너 발치 앞선다.
한국과 중국의 인터넷 열기도 요즘 주춤했다.
중국의 인터넷 가입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으나 인터넷 회사들은 여전히 적자 투성이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벤처 열기가 사그라지면서 퇴출되는 인터넷 회사들도 속출하고 있다.
사실 중국과 한국의 인터넷 산업도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사회 저변의 디지털문화 확산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돈놀이의 산물이다.
세계의 자본은 야후의 성장을 지켜보며 새로운 자본 증식의 방법을 깨달았다. 한국과 중국의 금융기관과 사채업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인터넷 사용자는 꾸준히 늘어나는 데도 금융시장이 경색되자 한국과 중국의 인터넷 회사 주가가 폭락했다. 두 나라의 인터넷 열기는 산업 자체의 성장이 아닌 돈놀이였을 뿐임을 반증한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두 나라는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을 계기로 정보기술(IT)산업 전반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PC방은 한국에 이어 대만과 중국으로 퍼져나가면서 이들 나라의 PC산업도 덩달아 호황을 누렸다.
미국 업체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던 두 나라의 SW산업도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지나닷컴이나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처음에는 SW업체였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은가.
한국과 중국은 우연하게도 인터넷이라는 기회를 찾았다. 기회는 잘 살릴 경우 약이 되나 그렇지 못하면 독약이 된다.
언젠가 왕즈둥이 설립 초기부터 벤처 자금에만 관심을 쏟는 벤처기업들을 향해 한마디 했다. 『보약을 먹고 자신의 체력이 보강되었는지 스스로 보아라. 잘못 보신하면 모르는 사이에 오히려 피를 토하고 있을 것이다.』
30대 초반의 젊은이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 믿기 어렵다. 일본이 한국과 중국의 인터넷 열기를 조롱하면서도 내심 두려워하는 것은 왕즈둥같은 인물이 하루가 다르게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