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들 테헤란 등진다

「테헤란밸리를 벗어나자.」

벤처시장 냉각이 장기화되면서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테헤란로 인근 벤처기업들이 강북과 구로 등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10월 이전만 해도 테헤란로를 약간 벗어난 2∼3선 지역에 포진하려는 성향이 높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테헤란로를 멀리 벗어나려는 경향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는 또 창업 벤처업계에서도 나타나 최근 창업하는 벤처기업들도 처음부터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한 강남 일대보다는 임대료가 저렴한 다른 지역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 테헤란밸리 엑서더스=인터넷광고 전문업체인 온앤오프(대표 구본용)는 최근 강남 신사동에서 강북 충무로 극동빌딩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른 회사와의 합병문제를 비롯해 자금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주변의 설명이다. 인터넷 소프트웨어(SW)와 하드웨어(HW) 유통업체인 소프트와레즈(대표 우영한)는 광진구 자양동에 자리를 잡았다. 반도체 검사장비업체인 모주(대표 김상조)는 창업보육센터 입주기간이 끝나면서 임대료가 싼 일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밖에도 조인스닷컴과 와우시스템 등 최근 테헤란밸리를 떠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분당 등 외곽지역이나 서울 다른지역으로 사무실을 이전하는 추세다. 이같은 현상은 운영자금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는데다 테헤란밸리가 관련 지원업체가 가까이 자리한 이점 외에는 교통과 임대료 등 환경면에서 득될 것이 별로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 외형보다 실속=올초까지만해도 테헤란밸리 입주 자체만으로도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받았으나 이제는 수익모델 등 기업의 내재가치 평가가 중요시되면서 창업기업들이 장소에 연연하지 않는 풍토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테헤란밸리가 아닌 지역에서 검소하게(?) 창업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 지난 10월 서울사무소를 오픈한 대덕바이오(대표 성창근)는 아예 처음부터 구로구 시흥동에 둥지를 텄다. 3D 캐릭터 개발 및 웹호스팅업체인 네오마인도 구로에서 사업을 시작했으며 VR시스템업체인 디오컴도 본격 사업화를 구로에서 준비중이며 캐시백업체인 네카드도 방배동에 첫 둥지를 틀었다. 창업벤처기업 관계자들은 『자체 자금보다는 순전히 펀딩이나 외부자금으로 운영하는 벤처기업들이 시작부터 비싼 임대료를 물고 테헤란밸리에 입성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문제』라고 강조한다.

◇ 벤처빌딩주들의 유혹=벤처기업들의 탈 테헤란밸리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벤처붐을 타고 잇따라 설립된 테헤란밸리 벤처빌딩주들에게는 비상이 걸렸다. 당장에 입주기업이 속속 떠나면서 재입주기업을 찾기가 만만치 않은데다 형편상 임대료를 내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벤처빌딩 지정부터 취소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에 따라 빌딩주들은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벤처기업 입주를 독려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탈 테헤란밸리를 선언한 모 벤처기업 사장은 『현재 미래에셋측으로부터 투자와 함께 미래에셋벤처타워 입주를 권고받아 고민중』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영동대교 부근으로 이전한 마이스터컨설팅의 한재방 사장은 『대부분 벤처기업의 경우 내방객이 많지 않은 특성상 자신들의 업무에 편하고 저렴한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며 『벤처기업들이 비싼 임대료에 교통문제 등을 감수하며 테헤란밸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