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말 전세계적인 Y2K문제로 시끄러운 가운데 한 해를 시작한 우리 전자 산업계도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밀레니엄 첫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 와 있다.
올해 전자·정보통신 산업은 21.7%의 높은 산업성장률로 IMF의 어두운 터널을 순탄하게 극복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고성장이라는 알찬 성과를 거둬낸 한 해로 평가될 것 같다.
수출은 지난해에 이어 30%를 넘어서는 증가율로 680억달러를 무난히 달성할 전망이다. 총 수출비중의 39%를 차지하는 전자산업이 우리경제의 중심축이란 점에서 누구도 그 영향력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전자·정보통신 분야의 산업생산도 17.7%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총 97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보다 떨어진 성장률이긴 하나 올해 예상되는 우리 경제성장률 9.3%의 2배에 육박하는 좋은 성적표다. 우리 전자·정보통신 산업은 이같은 수출과 생산의 호조를 배경삼아 연말까지 무난히 20%대의 성장세를 기록할 전망이다.
사실 지난해 전자·정보통신 산업계가 보여준 34.2%의 성장률은 IMF사태의 위기속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경제를 간신히 제자리에 갖다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올해의 성장은 제 궤도를 찾은 가운데 한 단계 도약한 모습이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더욱이 올해 국내 전자·정보통신 산업계의 성적은 새해 벽두부터 그리 좋지 않은 국내외 경제상황속에서 일궈졌기에 빛을 발한다.
사실 올초부터 전자·정보통신을 비롯한 경제계는 위기감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침체를 보여왔던 코스닥은 올 1월로 들어서면서 미국에서 불거지기 시작한 이른바 닷컴 거품론의 영향을 받아 위기감 속에서 급속한 투자냉각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전자·정보통신 업계와 첨단 벤처기업들은 지난 4월들어 드러난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와 포드사의 대우자동차 인수포기 등에 따른 구조조정계획의 차질 여파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어 8월말부터는 산유국의 감산정책으로 인한 전세계적인 고유가 위기의 영향을 외면할 수 없었다. 전자·정보통신 산업계에 미치는 유가인상의 영향은 중화학공업에 비해 낮을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내수확산에는 최대 악재인 것이다.
이는 올해 반도체 총수출액 255억달러를 웃도는 290억달러의 비용이 원유수입 대금으로 지출되는 데서도 잘 설명된다.
더욱이 배럴당 1달러의 유가인상 때마다 10억달러의 추가비용이 든다. 국제원자재가격 앙등요인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미국경제의 새로운 활성화 요인으로 세계경제에 막대한 파급효과를 보였던 미국경기의 위축 분위기도 하반기 산업전반의 위축을 한 몫 거들었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속에서도 우리 전자·정보통신 산업계는 훌륭하게 위기를 극복하고 견실한 고도성장을 이룩했다.
전 산업계가 경제위기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서도 전자·정보통신 산업계는 상반기부터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또 연초부터 가전제품에 대한 특별소비세가 폐지되면서 내수시장의 움직임은 활발해졌다.
밀레니엄버그로 불리웠던 컴퓨터 2000년 인식오류(Y2K) 문제가 무사히 해결되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컴퓨터 구매자들의 대기수요가 연초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컴퓨터 산업계는 이를 기반으로 올해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는 즐거움을 맛보기 시작했다.
상반기안에는 지난해보다 안정세를 보인 정보통신 산업계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초고속통신망 구축에 따른 인터넷 관련 서비스의 확대,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시스템 구축 등으로 정보통신 장비 및 컴퓨터 산업계는 그 어느해보다도 인터넷 확산의 덕을 톡톡히 봤다.
수출에서도 반도체·컴퓨터·통신장비·이동전화기 등을 주축으로 쾌조의 흐름을 보였다.
내수시장을 보면 이동전화단말기 산업계는 상반기 중 2600만 무선통신가입자를 기록하면서 무선인터넷서비스 확산의 시대에 본격 진입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물론 단말기제조업체는 지난 6월 1일부터 실시된 이동전화가입자에 대한 단말기 구입 보조금 철폐정책으로 다소 위축된 게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는 SK텔레콤과 신세기이동통신의 합병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0월 이후 기업들의 적극적 마케팅 전략에 힘입어 회복세에 들어섰다.
그러나 이러한 대내외적으로 우수하게 나타날 전망인 올 전자·정보통신 산업 성적속에서도 관련업계는 내년도에 대한 대책을 짜기에 부심하고 있다.
내년도 세계경기 위축, 미국경기 위축에 따라 우리 경기가 5.3%의 성장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연착륙 전략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고도성장의 성적을 냈다고는 하지만 2000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우리 경제가 정부의 금융분야 등에 대한 구조조정 미흡, 우리 벤처에 영향을 주는 미국 경기침체의 여파, 전세계적인 고유가 흐름속에 반도체 가격의 지속적 하락에 따라 끝물에 예상외의 손실까지 겪고 있다.
기이하게도 올해 전자·정보통신 산업계는 전분야에서 예년의 「상반기 보합, 하반기 강세」의 모습이 역전돼 「상반기 호조, 하반기 퇴조」의 흐름을 보이는 등 이상현상을 보여왔다.
이 시점에서 정부는 「오직 수출을 통한 경제 활성화」를 표방하면서 경제의 재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올해 무역수지 흑자규모인 100억달러를 넘어 연말까지 120억달러 흑자는 무난하리라는 전망까지 나와 최대 주력인 반도체 수출의 손실에 따른 우려를 씻어주고 있다.
연초부터 터진 밀레니엄 첫 해의 상승기조는 이러한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이뤄낼 수 있는 성과였다. 이 저력을 바탕으로 우리 전자·정보통신 업계는 갖가지 악재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으로 또다른 한 해를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